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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시를 이야기하자_이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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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061회 작성일 18-07-1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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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7.12 칼럼

젊은이여, 시를 이야기하자.

이기록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학교마다 문예부가 있었고 부산 고등학생 전체 문학 모임도 많이 있었다. 문학 모임끼리 교류도 하고 작품도 품평하면서 어설프지만 자신들 나름의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그렇게 학창 시절 나는 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학교에서의 문예부는 명목만 유지하거나 입시에 대비하기 위한 모임으로 변해버렸고 아예 사라져버려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입시 중심의 교육에 집중하다 보니 순수한 의미의 문학 동아리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결국 시는 국어 문제의 정답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머물게 되었다. 문학을 쓰고 읽어야한다는 당연한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삭막한 미래의 지성인들이 자라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제도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어느 정도 사회 제도에 타협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함을 일으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시인들이 그들 나름의 삶과 고뇌를 문학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부산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며 느낀 거지만, 분명 시인은 많지만 젊은 시인, 특히 20, 30대의 시인들을 만나는 일이 어려웠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젊은 시인이나 시인 지망생들을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기 어렵다는 거다. 원인이 단지 학교 교육의 문제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지만 학생들이 시를 접할 시공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소규모 시창작 모임을 7년 정도 이어오다 보니 부산 안에서도 시를 쓰려는 젊은 시인 지망생들과 시인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어디에선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힘껏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어디선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시인으로, 작가로 살기 위하여 꾸준히 혼자만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부산 안에서 시를 쓰는 젊은 작가들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러 문학 단체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참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생이나 예비 작가 모임 같은 활동들을 통해서 그런 노력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노력에 비해 젊은 시인의 등장은 찾아보기 힘든 일이 되었다. 부산 문학에서 젊은 시인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젊은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젊음은 진보적 사고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진보라는 말은 발전적 미래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다. 그런데 젊은 시인들이, 젊은 시들이 없다는 건 그만큼 삶과 문학의 영역에서 실험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부산 안에서 젊은 시인 지망생들이 시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찾아봐도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예전에 비해 문학 강좌들이 늘어나고 다양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강좌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는 느낌이다. 시를 쓰고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더욱 다양해지고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존재하는 강좌들이 아닌 참여하는 강좌를 만들기 위해 대안을 찾아보고 노력해야 한다. 공간이 다양해져야 그 공간을 활용할 사람들이 늘어나듯 시를 쓰고 읽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부산을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한다.

 

시는, 사람의 이야기다. 점점 시를, 문학을 쓰고 읽는 사람들이 없어져 가면서 사람에 대한, 사람의 인격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사라져가는 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시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쉽게 말하고 그들의 행동을 쉽게 비판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너무 감정적일까? 우리에게 감정은 사라진 것일까? 아니 분노하는 감정만 남게 된 건 아닐까? SNS를 통한 짧은 글들이 넘쳐나면서 즉각적인 반응의 글들이 인기를 얻고 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글들이 발표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들이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말의 기능 중에서 사고의 기능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염려되기도 한다. 고뇌하지 않고 발설하는 무분별한 글의 낭비는 아닐까 싶다.

 

문학은 다양한 삶을 이해하는 수단이며 소통하는 방법이다. 다양한 세대와 이야기를 하며 문학 본연의 가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단체에 소속된 작가들은 스스로 권위의식에 빠져서는 안 되고 끼리끼리의 문화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되는 현실 속에서 나약해지지 않고 나태해지지 않기 위하여 무엇을 위해 살아야할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기이다. 여러 단체들의 방관자가 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활동이나 역량이 강화되었으면 한다. 사람이 없는 문제를 이야기하지 말고 사람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우리는 당장 시급한 일이 아니라고 미루어두고 있다.

 

부산에서 젊은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현재까지의 문학과 미래의 문학에 대해서 깊이 있는 토론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학의 공간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

 

젊은이여 시를 이야기하자.

 

 

- 시 쓰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