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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동, 1980-2000_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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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5-16 14:19 조회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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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5.14 에세이

문현동, 1980-2000

현 수

 

 

나에게 있어 문현동은 부산의 상징이다. 내가 유년시절이자 인생의 절반을 보낸 곳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문현동이라는 동네에는 살아 본 사람으로서만이 볼 수 있는 어떤 결이 있는데, 그것이 부산 그 자체의 얼굴이라 해도 될 것만 같아서이다.

 

내가 살던 곳은 부산에서는 문현 안동네라 불리는 곳이었다. 환승이 없던 시절에 시내 대부분의 중심지들과 버스 한 번으로 연결되는 놀라운 교통의 요지이면서도 여름철 장마가 졌다 하면 물에 잠겨 버리곤 하는 저지대인 문현교차로. 그곳에서 황령산을 향해 완만한 경사로 올라가면 나오는 야트막한 동네. 그곳에서도 달동네에서 살았다. 가난한 우리 가족들은 달동네에서도 전세살이를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80년대 중반쯤에는 내가 살던 달동네는 제대로 개발도 되지 않았다. 기억을 곱씹어 보면 큰길에서 골목을 통해 위로 올라가다가 공터 하나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올라가 집으로 들어갔다. 집 대문에서 나와서 시멘트로 포장된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두 집 위로 나가면 산으로 바로 이어졌다. 그 산 위 공터에서 나는 방아깨비를 잡고 콩벌레를 굴려가며 놀았다. 자치기엔 영 소질이 없었지만 비석치기는 많이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즈음 문현2동 언덕 중턱으로, 중학생일 무렵 문현1동 언덕 중턱으로 반지하 전셋집을 옮겨가며 살았다. 그리고 나는 문현1동에서 문현교차로를 끼고 맞은편인 문현4동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친구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문현교차로가 문현3동이니, 20년 간 문현동은 죄다 누볐다고 할 정도로 구석구석을 다녔다.

 

첫 이사 이후로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10년 넘게 지내 온 달동네 밖 문현동은 참으로 기묘한 곳이었다. 전형적인 주거지역인 문현1동과 2동이야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부산 북항에 해당하는 감만 부두로 이어지는 문현4동은 학교와 부두, 주정공장, 그리고 화물 열차가 간간이 지나가지만 그렇지 않을 때엔 폐선로처럼 느껴지는-그리고 실제로 언젠가부터 폐선로가 된- 황량한 철길 따위를 끼고 있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으면 간간이 술 찌꺼기 냄새가 공기를 타고 역하게 불어들기도 했고, 교정 위로 헬리콥터가 지나다니기도 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는 문현동 곳곳에 단독 오피스텔 건물들이 하나씩 들어섰다. 그게 이상하게 느껴졌던 건, 그 무렵은 부산 곳곳에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인구 밀도는 적지 않았지만 가난한 노인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파트 단지는 좀처럼 들어서지 않았다. 대신에 주변의 앉은뱅이 건물들과 위화감이 느껴지는 오피스텔들은 초코파이에 박아 놓은 생일 케이크용 초처럼 어울리지 않게 환했다.

 

9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9년부터 내 친구들은 문현교차로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했는데, 밤이 되면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했다. 낮에는 노인들과 학생들이 가득하던 문현교차로가 밤만 되면 헐렁하게 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젊은이들이 돌아다닌다는 것. 길에도 비싼 외제차들이 꽤 많이 보인다고 했다.

 

문현2동의 북서쪽 일대의 군부대 자리는 금융단지를 건설한다고 한 계획으로 전체 부지를 비운 이후로 몇 년에 걸쳐서 공터로 놓여 있었다. 그럴 리가 없음에도 나는 그곳이 영영 폐허처럼 버려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 보다는 기대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높다란 신식 건물들이 들어섰다. 맞은편에 즐비한, 늙어 웅크린 주택들과 어울리지 않는 이곳에서는 여느 교외 신도시들마냥 길을 다니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다.

 

나에게 부산이란 문현동과 같다. 모퉁이 하나만 돌고 길 하나만 건너도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계획적으로 개발되기보다 즉흥적이고 파편적인 난개발의 산물.

 

문현동에서 떠나고 나서 10년이 넘게 시간이 흐르고 내가 살던 달동네를 다시 찾을 일이 있었다. 그 달동네를 떠난 지는 20년이 지난 셈이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자랐겠는가. 이미 산 위로 산복도로가 시커먼 아스팔트로 깔려 버린 그 아래에서, 나는 큰 길에서 집에 가기 위해 들어서던 골목 입구를 간신히 찾고 들어가 보았다.

 

어렸을 적엔 너머가 보이지 않았던 높은 담들이 가슴께까지도 오지 못하는 골목을 지나며 미니어처 마을에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풍경이 죄다 바뀐 것쯤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방아깨비가 사는 곳도, 비석치기용 돌들도 모조리 사라진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낯선 건 유년시절엔 산 위로 한참을 올라갔다고 기억했던 높이가, 어른이 된 내겐 너무나도 낮더라는 것이다.

 

부산에서도 외부로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문현동에 대해 사소한 조각 같은 기억들을 늘어놓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실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나처럼 그 동네를 살면서, 자기의 개인사로 동네의 표정을 보아온 사람들의 수만 해도 다 셀 수도 없을 텐데. 그런 표정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직소퍼즐처럼 짜 맞추어 보면, 아름답지는 않을지라도 살아 있는 동네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하여 이렇게 짧게 문현동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 올해 휴식을 갖고 있는 개념미디어 바싹의 편집장, 10년 역사를 뒤안길로 한 한페이지 단편소설의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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