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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시간의 층위4_정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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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3-29 13:51 조회2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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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3.29 기행문

세 가지 시간의 층위4

- 재일동포 유적지 답사 및 교류, 동포넷 16차 방문단 인상기 -

정재운

 

 

봉분을 보자,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처녀귀신이고 뭐고 절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허나 당시의 난 산길을 벗어나는 데만 오로지 열중해서 무릎에 흙물 드는 짓 따위 하질 않았다. 그 매정함에 세월을 덧입힌 채로, 무슨 영광이 있다고 학사와 석사 졸업까지 맞고는 하단동을 떠났다. 화강석으로 만든 일본식 묘지들이 눈에 들어와 그제야 휴가묘지에 닿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시감이 사라지고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화강석을 탑처럼 쌓은 형태의 그들의 묘를 찬찬히 톺아보듯 눈을 가늘게 떴다. 사각형 좌대 위에 유골을 안치한 화강석 함이 놓여있었고, 그 앞에는 향을 피우고 제를 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듣기로 휴가묘는 휴가 집안의 선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그들의 집안에 도둑처럼 숨어든 슬픈 조선인 유골 서른일곱 구를 만날 차례다. 차갑고 단단한 위용을 내뿜는 묘 사이사이 어디에 묻혀있다는 것일까. 기껏해야 잡풀뿐인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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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사람의 묘도 있지만, 애완견이나 고양이의 묘도 여느 인간들의 묘 못지않게 제법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어디에 있을까. , 고양이 무덤 어드메 누워 계신가, 하는 찰나 잡풀 사이로 듬성하고도 초라하게 박힌 돌무덤이 보였다. 작은 돌들이었다. 이름 모를 징용자들의 무덤이 바로 내 발 밑에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신 날은커녕 이름도 새겨 넣을 수 없는, 흡사 타제 석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 돌들이 과연 묘라는 말인가. 이 돌을 일컬어 보타이시라고 부른단다. ‘쓸모없는 석탄이라는 뜻의 규슈지방 사투리인데, 근처 탄광에서 나온 것을 이곳까지 이고 지고 가져와 표지를 삼았다고 한다. 살아있을 때도 존엄을 획득하지 못한 존재들의 사후를 저렇게, 이런 모양으로 내버려둬도 되는가. 하긴, 타국의 땅에서 할 수 있는 당시의 최선을 현대인인 내 시각을 빌어 멋대로 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자각과 동시에 허리춤에 저릿한 통증이 지나갔다. 보는 이가 없었다면 허리를 꺾고 절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마저도 큰물에 휩쓸리고, 묻히어 남아있는 것이란다. 축축하게 젖은 땅 여기저기 거인이 공기놀이라도 한 듯 드문드문 박힌 돌들을 내려 보는데, 자꾸만 시야가 흐릿해졌다. 흙물이 든 한반도기를 뽑고, 하얀 바탕의 새 기를 꽂았다. 국화를 꽂았다. 술을 뿌렸다. 그 예전, 에덴공원에 누운 넋에게도 나는 한 잔 술을 부었어야 했다. 내 입에만 술을 들이부을 것이 아니라눈치 없이 솟는 눈물을 잠그느라 최선을 다해 머릿속을 산만하게 헝클였다.

19745, 규슈지구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를 하면서 당시 탄광노동자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김귀동 씨의 증언에 따라 이곳 휴가묘지가 세상에 드러났다고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시간의 층위가 존재한다. 이들이 묻힌 1910~30년대의 시간과 세상으로 드러난 74, 그리고 2017년의 게으른 내가 눈물을 떨어뜨리며 여기 앞에 선 시간. 85년생인 나는 삼십 년 넘는 시간의 빚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체를 매장했음을 표지하는 역할 이상은 절대로 해낼 수 없었던 거친 돌-비명도 날짜도 없는 그것-들은 내가 그 유난스런 자각을 하기에 절대로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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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산만한 머릿속은 더불어 하나의 그림을 좇기 시작했다. 근처 탄광촌에서 생을 붙들고 이어온 이들이 일본인들의 감시 하의 가혹한 채탄 작업 끝에 절명하는 순간을 말이다. 그들의 유골을, 고향을 함께 떠나온 동료들이 한 구 두 구 휴가집안의 묘지에 몰래 들어가 묻는 장면을 말이다. 분명 그들은 야음을 틈탈 수밖에 없었으리라. 인간이 인간을 매장하는 것을 죄 짓듯 행하는 행위의 비의(悲意), . 내 상상은 거기까지는 차마 닿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곳이 오다야마 묘지처럼 공식화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역에 관한 증인이 일정 수 이상 충족시켜야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했다고 했다. 엄연히 학술적인 세계의 법칙은 그러하지만, 오늘처럼 뒤늦게 찾아온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길이 결코 끊이질 않는다면 이 휴가묘지는 우리네 가슴 속에서 결코 잊히질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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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시간의 층위5>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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