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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를 넘어서는 가짜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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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3-13 17:15 조회2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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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03.15 칼럼

진짜를 넘어서는 가짜

김민지

 

 

1940, 프랑스 라스코 지역의 한 동굴에서 선사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발견되었다. 연구 결과 벽화는 기원전 약 15천년에서 1만년 사이에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사시대에 그려진 회화들은 남아 있는 수가 적기도 하고, 엄청난 시간의 간격으로 인한 훼손의 정도도 중요한 문제라서 라스코 동굴 벽화는 미술사에서 유의미한 발견이었다. 가장 최근에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양호한 상태로 발견된 벽화에 온 세계가 주목했고, 많은 사람들이 라스코 지역으로 몰려갔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겨놓은 그림을 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경험이지 않은가.

 

그 엄청난 발견 이후, 1963년에 라스코 동굴은 폐쇄되었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보존을 위한 문제가 가장 컸고, 또 관광객 유치 같은 목적보다는 선사시대 연구 등의 학문적인 목적을 이유로 일반인에게는 더 이상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신 1984, 인근 채석장에 라스코 동굴에 그려진 그림들 중 일부를 복사하여 개방하고 있다.

 

사람들은 라스코 동굴 벽화를 보러가며 분명 선사시대의 벽화를 본다. 라스코 동굴안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곳은 분명 라스코 동굴이 아니다. 라스코 동굴처럼 꾸며진 곳이며, 그림도 라스코 동굴 안에 있는 벽화의 복사본이다. 사람들은 가짜를 본다. 진짜 라스코 동굴 벽화가 아닌 복사본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다. 진짜와 똑같이 그려진 가짜. 이것을 과연 예술 혹은 미술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진짜와 가짜 중 어떤 것은 예술이고 어떤 것은 예술이 아닐까. 원본만이 예술성을 인정받는가? 그렇다면 복사본을 보고 감동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존 중인 <모나리자>는 총 세 버전이 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원본과 후에 만들어진 복사본 2개이다. 많은 사람들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보고 오지만 그들이 본 모나리자가 진짜 모나리자인지 아니면 복사된 모나리자인지 사실상 구별해내기란 힘들다.

모나리자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치자. 그런데 그것이 복사본이었다면 어떨까. 나는 복사본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진짜도 아닌 가짜를 보고 말이다.

 

진짜와 가짜의 세계.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며 예술이 가진 원본성(originality)의 의미는 파괴되기 시작한다. 인쇄를 비롯하여 사진과 영화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원본이 갖고 있던 그 절대적인 가치가 무의미해져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원본으로부터 복사본을 만들어냈다. 이제 모두가 평등하게 모나리자의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 많은 복사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원본이 가진 가치는 여전히 유효할까.

현대 미술에서 이야기되는 흥미로운 논점 중 하나가 바로 복제와 복제 간의 관계이다. 그야말로 원본은 없어지고 복제만이 남은 상황.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것을 시뮬라크룸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비교하거나 대조할만한 원본이 없어진 상태에서의 복사본들이 차지하는 위치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이미지, 복제물이 원본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현실도 가상에 잠식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흔히 믿기 어려운 일이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면 마치 영화같다.”고 표현한다. 분명 자신이 경험한 것은 현실인데, 영화라는 가상의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화라는 가상, 현실을 흉내 낸 가짜가 진짜 현실, 경험을 대체해버린 셈이다.

 

1988, 하계 올림픽은 서울에서, 동계올림픽은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렸다. 티비를 통해 올림픽 개막식을 지켜본 사람들은 동계올림픽이라는 계절에 맞게, 그리고 캐나다라는 국가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눈 이미지들을 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본 것은 진짜 눈이 아니었다. 올림픽 주최 측에서 깔아놓은 모래를 본 것이다. 모래는 티비가 이미지를 재생산할 때, 그러니까 개막식 장면을 중계할 때 진짜 눈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도록 했다. 개막식에 사용된 모래는 눈보다 더 고르고, 녹지도 않았다. 때문에 지저분해지지도 않고 카메라에 반사되지도 않았다.

 

분명 모래는 진짜 눈처럼 보였지만, 실제 눈이 갖는 문제점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눈의 완벽한 대체물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모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지개막식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뿐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진짜 올림픽은 티비를 통해 지켜본 사람들만이 봤던 것일 수도 있다. 눈보다 더 눈 같은 모래를 눈으로 착각하고 본 사람들. 그들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보고 진짜라고 생각한 것이다. 적어도 그 개막식을 지켜본 사람들에 한해서는 진짜와 가짜에 대한 차이는 무의미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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