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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2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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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016회 작성일 18-01-1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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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도 들떴다. 말로만 듣고 교과서에서만 보던 유물을 실제로 볼 수 있단 사실에 즐거웠다. 단 하나만 바라보고 왔던 새벽부터의 여정이 이제 클라이맥스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평소와는 다른 경험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기대를 품고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해가 진 익산은 그들의 동네보다 훨씬 추웠다.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의 히터가 내뿜던 상쾌하지 못한 뜨거운 열기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바람이 두터운 점퍼를 뚫고, 털장갑을 뚫고, 목도리를 뚫고, 세 사람의 몸을 옥죄었다. 아직 손님이 들어차지 않은 버스는 냉랭했다. 차례로 표를 보여주고 조용히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몇 마디 대화도 없이 출발을 기다렸다.

A는 자신이 제안한 여행이 이렇게 끝나버릴 줄 몰랐다. 자신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무의미한 여정이 된 것만 같았다.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결국 실패했다. 아직 공사가 덜 마무리 되었다는 안내원의 말. 거대한 철판으로 가려진 탑. 그 앞에 섰을 때 A는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 힘이 빠졌다.

B는 미안해하는 A의 모습이 신경 쓰였다. 결과적으로 A의 말처럼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무의미한 여행이긴 했지만, 풀 죽은 A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심 탑을 볼 생각에 기대했는데. 철근에 사로잡힌 돌탑을 상상해야만 했다. 탑이 저만치 달아났던 건 아닐까, B는 생각했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C는 앞으로 남은 4시간의 여정에 대해 생각했다. 불편한 자세로 잠깐의 수면에 빠지고, 휴게소에 들르고, 다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었다. 탑을 못 본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돌아가는 길이 마음에 걸렸다. 탑이 없었던 것처럼, 4시간이 지났을 때 집을 찾을 수 없으면 어쩌지. C는 공상을 떨쳐버리려고 속으로 웃었다.

 

버스는 세 사람을 빠르게 원래 자리로 데려다 주었다. ABC는 오늘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집으로 향했다. 달은 여전히 크고 노랗게 존재감을 과시했다. 세 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 갈 길로 갔다. 혼자 남은 C는 모자를 뒤집어썼다. 우리는 언제 미륵사지 석탑을 볼 수 있을까. C는 머릿속 생각을 지우며 가로등이 없는 깜깜한 길을 따라 모퉁이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미학을 공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