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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시간의 층위2-1_정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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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038회 작성일 17-12-2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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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12.29 기행문

세 가지 시간의 층위2

- 재일동포 유적지 답사 및 교류, 동포넷 16차 방문단 인상기 -

정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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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다음 일정은 타가와시 석탄·역사박물관이다. 그곳에 도착해 받은 첫 인상은 놀라움이었다. 쫓기기라도 하듯 덥석 거꾸로 물은 담배를 바로 물었다. 일행과 거리를 둬 혼자 걷는 동안, 어리바리하게 놀랐던 속을 가만히 되작여보았다. 잘 닦인 오솔길을 따라 소풍 나온 아이들이 한국인 무리를 발견하고는 호기심을 띤다. 이방인을 보면 제가 아는 이국의 말로 지분거리고 싶어지는 건 어느 나라 꼬맹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박물관에 진입하기 전부터 옥외 전시장에 떡 하니 서 있는 증기기관차가 우리를 맞는다. 산업혁명과 근대의 상징인 모형을 지나치자 채탄, 굴진, 운반 등에 사용된 로더헤더(갱도 굴진기) 등의 대형 기계류가 또 나왔다. 후쿠오카현의 중앙 지역인 치쿠호는 근대의 주요 동력이었던 석탄의 주요 산지였단다. 우리나라가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계획 기간인 60년대 초반 석탄 생산량이 급증한 뒤, 산업의 주에너지원이 석유자원으로 옮아오면서 쇠퇴기를 맞았듯 일본의 탄광지들 역시 그와 비슷한 운명을 맞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은 미쯔이, 미쯔비시 사()가 운영했던 탄광자리로, 폐광되어 방치된 곳을 1983년 타가와시에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단장해 개장했다고 한다. 이제는 박제된 구시대의 중기(重機)들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은 분명 현대의 콤팩트한 기기들로부터 받을 수 없는 압도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옮기는 걸음마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악필로 휘갈기지만, 이때만치 수첩의 낱장을 넘기는 순간이 쾌감을 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봐야 블루투스 키보드와 아이패드로 정연하게 옮기는 작업을 해야 할 것들이다. 별것도 아닌 감정을 사소설처럼 늘어놓아선 안 될 것이다. 경계하자고, 나는 또 한 대의 담배를 물었다. 들까불지 말자. 나는 이만큼 지독한, 다크투어리즘을 견뎌낼 만한 웃음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웃음이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것이기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보들레르는 웃음이란 무한정의 위대함의 표시이자 비참함의 표현이라고 했다. 인간이 절대적 존재와 비교했을 때는 무한정의 비참함이지만, 동물들과 비교하면 또 무한정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이 두 가지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삶 속에서 충돌을 일으키면서 웃음을 발생시킨다. 우스꽝스러움은, 웃음의 원동력이란 웃는 사람 안에 존재하는 것이지, 웃음의 대상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넘어진 당사자가 자신이 넘어진 사실을 두고 웃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넘어진 존재의 비참함과 넘어지지 않은 자의 위대함 사이에서 발생하는 웃음이란 결국 웃는 사람의 우월성의 표시가 되기 마련. 우월함이란 존재를 고양시키고, 창의적 글쓰기를 가능케 하지만, 그런 욕심 따윈 진작 버리기로 했질 않나. 이 여정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없듯, 글도 기억을 보존하는 데에 작은 받침 역할쯤만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설레거나 웃질 말자. 그러지 말자 다짐하니 저 쇳덩이에 갈마들어있는 근대인들의 원초적인 욕망이 끈덕지게 감각되었다. 내가 저들의 욕망을 딛고 배태(胚胎)된 현대인이라는 새삼스런 자각이 일자, 조용히 몸서리가 쳐졌다. 이제 알겠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타가와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에 닿기 전, 나는 내가 받았던 놀라움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벨탑을 연상케 하는 구 미쯔이 타가와 광업소 이타 수갱 제일·제이 굴뚝(국가등록문화재 경산성 인정 근대화 산업 유산-이타 수갱의 동력용으로 설치되었던 증기기관의 배연용 굴뚝으로, 1903년에 축조된 벽돌제 굴뚝)의 규모 때문도 아니요, 수갱로(국가등록문화재 경산성 인정 근대화 산업 유산-지하 심층부의 석탄을 채굴하는 수직 갱도의 감아올리는 기계, 영국제인 백 스테이 형태로 1909년에 축조)의 정교함에 매료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타가와시 내에서도 중앙에 위치해 JR이 넓게 감아 돌아나가는 여긴 JR 타가와 이타역에서 도보로 10, 니시테쯔 석탄 기념 공원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5분만 걸으면 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박물관을 끼고 시민수영장과 문화센터가 자리한 석탄기념공원의 풍경이 놀랍다. 그 사이 제법 멀어졌는지 일본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저만치서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애먼 데를 보듯 고개가 돌아간다. 그곳에는 여전히 우뚝 솟은 굴뚝이 있고, 그 시절의 탄광촌 주택을 본뜬 산업 체험관이 서 있다. 유채꽃밭으로 변한 탄광터의 상전벽해도 놀랍지만, 근대를 향한 그들의 열망을, 열망의 이면을 외면하고 자랑스러운 듯 박제해놓은 그 낯이 매우 놀라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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