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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이름의 <우아한 거짓말>(2014)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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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3,531회 작성일 17-10-1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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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10.12 영화비평

친구라는 이름의 <우아한 거짓말>(2014)

김민지

 

 

자살을 결심한 이들은 죽기 전 조용한신호를 보낸다.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거나 알 수 없는 말로 횡설수설하기도 하고 말없이 펑펑 우는 등 각자의 신호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한다. 말이 없던 아들이 손톱을 깎아 달라며 다가왔을 때 아버지는 알아차려야 했다. 아들이 자살을 결심했다는 것을. 일주일 뒤, 아버지가 출장 간 사이, 15살의 아들은 집에서 목을 맸다. 아들은 학교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천지도 그랬다. “생전 뭐 사달라는 말 안하던 아이가 몇 달이나 앞당겨 생일 선물로 MP3 플레이어를 사달라고 했던 날, 천지는 빨간 털실로 짠 목도리에 목을 맸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우아한 거짓말>(2014, 이한 감독)은 여학교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과 그로 인한 죽음,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건은 여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일어나지만 단순히 또래집단의 이야기로만 볼 수는 없다. 영화 속의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주변인들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동생 천지가 죽었다.”

 

동생의 죽음을 알리는 만지의 담담한 목소리는 영화 초반부터 관객의 감정을 흩트려 놓는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죽음이란 산 자에게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만지의 목소리에서는 그런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사건 전개의 전환점이 되는 털실이 등장하기 전까지 만지와 같은 담담한 시선으로 내용을 전개시켜나간다.

 

어린 딸의 죽음. 당장 가해자의 부모를 찾아가 머리채라도 잡아야 분이 풀릴 것 같은 상황이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다. 단지 잘 가라. 이년아…….’라고 말할 뿐이다. 언니는 동생의 책상 위에 놓인 국화꽃에 대고 말한다. ‘냄새 한번 더럽게 진하네.’

 

화연은 천지를 괴롭혔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아주 우아하게.

학교 폭력이라고 하면 으레 남학교의 물리적인 폭력을 떠올린다. 피를 보고 뼈가 부러져야 끝이 날까 싶은. 그에 비하면 여학교의 방식은 우아하다. 서로 체육복을 빌려 입고, 생일파티에 초대도 하며, 절친 선언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숨통을 내리 누른다. “우리 친구 맞지?”라는 친절한 말을 덧붙이면서.

 

난 짜장면이 너무 싫어짜장면 때문에 죽을 거야.”

 

천지에게 짜장면은 스스로 목을 매달았던 목도리와 같은 존재였을 터다.

화연의 생일날, 언제나처럼 ‘3라고 적힌 초대장을 들고 온 천지는 보신각에서 짜장면을 말없이 먹었다. 방안은 천지와 친구들, 그리고 카톡 알림음으로 가득 찼지만 그 곳에 천지는 없었다. 그날 억지로 삼킨 짜장면은 천지의 목을 휘감아 숨통을 조여 왔을 것이다.

 

소설은 천지를 파티에 초대된 반기지 않는 손님으로만 그렸던 반면 영화는 이 장면을 천지를 향한 아이들의 잔인한 놀이로 표현해낸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카톡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묵묵히 짜장면을 먹는 천지의 모습과 겹쳐져 더욱 비극적으로 보인다.

 

천지 엄마가 먹은 짜장면도, 미라가 뱉어낸 쫄면도 천지의 짜장면처럼 쉽게 삼킬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인물들은 토해내는 행위를 통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과 관계에 대해 반응한다. 영화 내용과 달리 원작에서는 천지는 생일 파티에서 먹었던 짜장면을 모두 토해낸다. 화연에 대한 신체적인 거부반응이다. 천지 엄마가 토해낸 것은 화연 엄마의 일방적이며 비열한 사과였으며, 미라의 목구멍을 막고 있었던 것은 천지를 향한 복잡한 감정이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모습을 그대로 닮는 것일까.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계층적 수직 관계는 아이들의 작은 사회인 학교 안에서도 존재한다. 강자는 돈과 힘으로 약자위에 군림한다. 돈이 있으면 힘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화연은 강자다.

 

화연에게 돈이란 친구관계를 유지시켜주는 도구다. 돈으로 산 친구들과의 관계.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과연 화연의 행동을 지적할 자격이 있을까. 요즘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있다는데 친구라고 못 살 것도 없지 않나.

 

화연이 자라면서 목격하고 체험한 세상은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화연을 방치한 화연의 부모. 부모는 딸의 미래보다 현재의 돈을 선택했다. 딸의 손에 돈만 쥐어주면 그만이었다. 부모에게 화연은 돈보다 늘 뒷전이었다.

 

영화는 천지의 죽음에 비중을 두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지갑이었던 화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즉 사건 중심으로 극을 이끌며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반면 소설은 경제적인 이유로 딸에게 무관심했던 화연의 부모를 직접적으로 그리며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부모는 경제 불안을 방패삼아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숨는다. 화연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십대 소녀들의 섬세한 감성을 그대로 표현한 후반부의 장면은 비극적인 현실과 대조되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감정적으로 고조된 관객은 뒤에 이어지는 천지에게서 등을 돌린 미라의 모습을 보며 천지가 느꼈을 감정의 낙폭을 그대로 경험한다.

 

빨간 털실의 존재는 인물들의 감정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천지의 죽음은 각자에게 드러낼 수 없는 상처이자 죄책감이다. 하지만 천지가 남긴 털실 뭉치 속의 메시지로 인해 인물들은 뒤엉켜있던 감정들을 스스로 풀어내기 시작한다.

 

만지는 화연을 결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으로부터 화연을 지킬 것 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천지를 위한 것이다. 만지에게 천지의 죽음은 지독한 성장통이었다.

 

<우아한 거짓말>은 아름다운 성장 영화가 아니다. 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성장한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