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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 탈식민주의를 넘어 세계를 품은 사상가2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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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313회 작성일 17-10-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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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 파농, 탈식민주의를 넘어 세계를 품은 사상가1>에서 받음.  

 

 

다음으로 파농은 식민지 민중의 의존 콤플렉스를 겨냥한다. 흑인들은 열등감에 휩싸이거나, 백인에게 의존한다. 이런 뒤틀린 인간상은 모두 백인 식민주의자 때문이다. 인종차별주의 때문이다. 인종차별의 구조를 작동시켜 사회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고 안정화 시키려는 백인들의 악의적인 욕망이 흑인을 갇힌 존재로 만든 것이다. 그러한 인종차별주의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하나의 비인간적인 행위와 다른 비인간적인 행위 사이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순진한 이상주의자의 헛된 꿈일 뿐이라고, 파농은 일갈한다.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식민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세계는 곧 착취의 세계다. 착취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인간의 자리를 먼저 찾아야한다는 파농의 주장은 모든 착취가 인종차별의 토대에서 세워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현재의 불평등한 세계화도 이 악의적인 관념 위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파농의 펜 끝은 흑인이라는 사실 그 자체로 향한다. 흑인은 인간이고 싶었다.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기에. ‘백인이 되어야 했다. 그게 인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하지만 그/그녀의 노력은 처벌당했다. 백인은 흑인이 하얘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기에. 그럼,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도대체 무얼 해야 인간이 될 수 있는 걸까? 흑인이라는 사실은 바로 이런 것이다. 순수한 백인도 아니고 온전한 흑인도 아닌 파농과 그의 이웃들은 저주받은인간이었다.

 

저주받은 흑인은 정신병자가 된다. 백인에 의해 흑인으로 여겨지지만, 정작 자신은 흑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한 인지구조가 형성된다. 이 구조는 가족 형태, 유아기의 교육, 그리고 사회를 통해 고착화된다. 그래서 파농은 흑인 어린이들을 위한 역사 교과서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것은 정신이상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백인은 이러한 흑인의 정신병에 한 몫 한다. ‘짐승 같은 성적 에너지를 가진흑인의 이미지를 유포하여 흑인들을 정형화된 틀 속에 가둔다. 인종차별과 섹슈얼리티는 이렇게 또 다시 결합한다. 파농은 흑인을 가두는 이미지는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퇴적물이라고 말한다. 백인이 이 퇴적에 기여했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파농은 7장에서 인정투쟁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흑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는 아들러와 헤겔의 생각에서 도움을 얻는다. 아들러는 과거의 열등감이나 콤플렉스가 현재의 정신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기비하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결국 다 허구적이라고 주장한다. 파농은 여기에서 반론을 제기한다. 그가 보기에 흑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열등감과 의존 콤플렉스는 허구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환경과 사회, 엄밀히 말하면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구조가 흑인들을 지배한다. 그래서 흑인에게는 열등감과 의존 콤플렉스, 단 두 가지의 선택지만 남게 된 것이다.

 

자의식은 오직 타자의 인정과 승인을 통해서 확보할 수 있다는 헤겔의 말은 파농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흑인이 인간일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타자가 필요하다. 타자의 인정을 받고, 또한 스스로 타자를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흑인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 타자는 자유와 연결된다. 자유로우려면 위험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위험이란 곧 낯설고 이질적인 것, 즉 타자이다. 파농은 위험을 무릅쓰고 타자를 껴안을 때 비로소 자유가 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행동은 인간이 부정의 존재이기에 가능하다. 인간을 경멸하고, 비하하고, 착취하고, 자유를 도살하는 모든 것을 강하게 부정할 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파농은 결론을 대신해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다. 글말이 아닌 입말로 쓴 책답게 파농의 말은 거침없고 명쾌하며, 뜨겁다. 그는 마르티니크 인의 해방을 넘고, 흑인의 해방을 넘어서 모든 인류의 해방을 꿈꾼다. 인종차별이 사라지고, 인간의 소외가 끝나며, 온갖 형태의 착취가 종말을 맞이하는 지구를 염원한다. 그리고 그런 세계를 위해 투쟁한다. 험난한 그의 여정에는 항상 타자가 함께했다. 왜 타자를 만나고 타자를 자신에게 설명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느냐고 묻는 파농의 질문은 우리를 날카롭게 찌른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흑인의 문제에 집중한 탈식민주의의 고전이지만, 이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의미는 더 풍부하다. 여전히 남아있는 인종차별주의, 진정한 해방을 이룩하지 못한 피식민지 지역들, 유색인의 얼굴을 덮고 있는 하얀 가면들. 파농의 말들은 세계가 당면한 뿌리 깊은 문제를 되짚어 보고, 치유하는 데에 훌륭한 무기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책은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식민성과 인종차별주의의 병폐를 생각해보게 하는 불편한 글이 되어야 한다. 끝으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다. 파농이 간절히 바랐던 세계는 모든 인간의 위계화를 끝내고, ‘당신이라는 세계를 건축할 자유를 누리는, 나와 타자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이었다. 이러한 세상으로 한걸음씩 나아갈 때, 좀 더 평화롭고, 평등하며, 깨끗한 지구로 변할 수 있는 잠재력이 반짝거릴 것이다.

 

 

 

-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미학을 공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