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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가사노동자들1_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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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3,614회 작성일 17-09-14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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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9.14 칼럼

홍콩의 가사노동자들

김민지

 

 

아나키즘 형성에 큰 영향을 준 러시아의 지리학자이자 사상가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1842-1921)은 그의 저서 빵의 쟁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주부의 노동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가? 왜 각 가정에서 어머니나 종종 서너 명의 하녀가 부엌일에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하는가? 인류의 해방을 바라는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해방의 꿈속에 주부를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이 이 혹사당하는 사람의 어깨에 지운 이 부엌일을 생각하는 것은 남자의 위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1)

 

그의 일갈은 가사노동을 여성의 당연한 헌신 정도로만 생각하던(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은 주류가 되지 못했고, 주부의 노동은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집안일은 재화의 영역에 편입되어서 시장의 평가를 받는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사노동 시장이 형성되고 수요자와 공급자가 열심히 거래에 나선다. 주목할 점은 이 영역이 국제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국가의 여성들이 가사노동자가 되기 위해 부유한 국가로 이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자 나라의 부엌일을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이 전담하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사노동의 세계화이다. 문제는 일자리를 위해 이주한 대다수 노동자가 그렇듯,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도 열악하고 불안한 노동환경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홍콩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홍콩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부자 도시이다. 2017년 기준으로 1인당 GDP가 약 44,000달러로 아시아에서 4번째로 높다(한국은 약 29,000달러를 기록한다).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했지만, 1국가 2체제를 보장받은 덕분에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영국의 영향으로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홍콩은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경제성장을 이어나갔다. ‘아시아의 4마리 용중 하나로 불렸던 홍콩의 발전은 인근 저발전 지역의 노동력을 끌어당긴다. 특히 1980년대부터 홍콩에 거대한 가사노동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홍콩의 살인적인 집값을 감당하기 위해서 맞벌이는 필수인 상황이고, 그러다 보니 가사와 양육을 책임질 사람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다.2) 점차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홍콩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약 380,000명의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홍콩 가정의 집안일을 책임진다.3) 홍콩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의 대부분은 필리핀 출신이다. 필리핀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주의 흐름은 홍콩의 특이한 문화경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매주 일요일이 되면 홍콩 중심가에 수만 명의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이 모여들어서 돗자리나 매트리스를 깔고 앉아 음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동포들과 함께 모국어로 수다를 떨고 노래를 들으며 타국에서의 힘든 생활을 견디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거리로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홍콩의 특이한 노동법 때문이다. 홍콩의 노동법에는 가사노동자가 근무지에 거주해야 한다고 명시되어있다. , 가사노동자는 자신을 고용한 고용인의 집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일주일 중 하루를 법정 휴일로 지정해서 무조건 쉬게 한다. 그런데 가사노동자의 경우 일터가 곧 거주지이기 때문에, 휴일에 집에 남아있을 경우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닌 모호한 상황에 처한다. 더군다나 집주인이 바로 옆에 있는 일터에서 마음 편히 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그들은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고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홍콩의 덥고 습한 거리에서 보내는 일요일은 오히려 이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다. 많은 가사노동자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나머지 6일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은 제대로 된 개인 공간을 보장받지 못한다. 홍콩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집값 때문에 소형 아파트가 많이 건설되어 있다. 웬만한 고소득자가 아니라면 작은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가사노동자가 생활하는 방은 대부분 침대 하나 겨우 들어가는 정도의 크기이다. 더 심한 경우는 방을 제공받지 못하기도 한다. 방이 없는 노동자는 세탁기 옆이나 부엌 바닥에서 잠을 자야 한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가사노동자는 충분한 휴식은커녕 사생활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심지어 CCTV로 노동자를 감시하는 고용인의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홍콩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과 폭력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고용인의 집이라는 폐쇄적이고 사적인 공간에서 일하기 때문인데, 일터와 거주지가 분리되지 않아 24시간 업무환경에 놓여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연스럽게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초과노동이 이루어진다. 위험한 노동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예컨대 고용인의 요구로 고층 아파트의 바깥 창문을 닦는 것이다. 전문 청소업체가 진행해도 위험한 일을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은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것이다.

 

운이 나쁜 노동자는 고용인의 폭력을 경험하기도 한다.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지시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을 가하는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손찌검부터 심한 경우 불에 달궈진 다리미로 몸을 짓누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가사노동자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4)

 

그동안 가사노동은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치부됐다. 밭이나 공장, 혹은 사무실이 아닌 부엌과 거실, 침실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모성애로 포장된 여성의 가사노동은 그 어떤 경제적인 보상도 필요 없는 고귀한 희생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들면서 집안일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가사노동에 값이 매겨지기 시작했다.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사노동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가사노동자의 위상은 자본이 쌓아올린 계급 피라미드 저 아래에 있고,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잡다한 일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즐비하다. 그 결과 가사노동도, 그것을 수행하는 가사노동자의 삶도 눈에 띄지 않는곳으로 계속 밀려나고 있다.

 

 

1)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이상률 옮김빵의 쟁취이책, 2016, p.181

2) 국제주택가격조사(International Housing Affordability Survey)에 따르면홍콩은 7년째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값을 유지하고 있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421&aid=0002524359

3) the guardian, “That one day is all you have: how Hong Kong’s domestic workers seized Sunday”, 2017.3.10. https://www.theguardian.com/cities/2017/mar/10/sunday-sit-in-inside-hong-kong-weekly-domestic-worker-resistance

4) 홍콩 내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노동실태에 관해서는 KBS 특파원 현장보고 54(2017.6.17. 토요일 방송)와 the guardian, 2017.3.10.을 참고해 요약

 

 

- <홍콩의 가사노동자들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