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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 엄마나 주부라는 이유로 더 이상 쪼그라들지 않기 위해_정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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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550회 작성일 21-05-3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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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사람, 엄마나 주부라는 이유로 더 이상 쪼그라들지 않기 위해

 

정희연

 


나는 나를 연구자로 소개하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요즈음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박사과정을 수료한지 수년이 흘렀지만 그간 한 일이라곤 근근이 학술대회 발표 몇 차례, 연구와 관련된 서평 몇 건의 작성 외에는 연구자로서 이렇다 할 생산물이 없다. 원체 무언가 잘 되어가지 않아도 아무렴, 괜찮아라고 긍정하는 성정이다만, 수료 이후 학위 논문의 제자리걸음, 학술지 게재 논문 없음은 언젠가부터 매일 아침 미묘한 불안감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수료 후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러니까 글자를 들여다볼 시간은 줄어들고 아이의 동태를 들여다보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쏟게 된 것이다. 아이는 너무나 잘 커갔고 아이에 대한 내 사랑도 너무도 잘 커갔지만, 나는 너무나도 잘 작아지고 있었다. ‘잘 작아지고 있었다는 말이 이상해 보이겠지만, 이 표현이 내가 느끼는 감정엔 가장 어울렸다.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난 엄마 자격이 없는 걸까로 옮겨갔다. 하지만 나는 나를 이루던 것들이 조금씩 탈락하며 총체적인 나가 쪼그라드는 기분을 부정할 순 없었다. ‘하루에 최소 6시간은 읽고 쓴다는 내 신조도 쪼그라들었다. 어느 날은 읽고 쓰는 데 6분도 할애하지 못했다.

 

나는 읽고 쓰는 사람, 그래서 찾아 나선 것이 나 같이 읽고 쓰는 사람들이 엄마로서 고군분투한 체험기나 고백록 같은 것들이었다. 나보다 앞선 경험들이 일깨워줄 지혜나 용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로서 느끼는 좌절이나 불안감을 신세한탄이나 푸념과 토로에서 그치지 않고, 읽고 쓰기로 승화(?)한 육아 선배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만난 첫 인연이 스테퍼니 스탈의 <빨래하는 페미니즘>(고빛샘 옮김, 민음사, 2014)(이하 <빨래>)이었고, 이 책과 함께 펴놓기에 좋다고 생각한 근간이 정아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천년의상상, 2020)(이하 <거짓말>)이다.

 

<빨래><거짓말>은 글을 업으로 삼고 있는 두 저자가 엄마로서의 경험과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그들이 읽어낸 다른 텍스트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둘을 함께 엮어낸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텍스트(와 저자)의 매력을 단순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절히 추켜세우기도 하고 정도껏 비판하기도 하고 적정선에서 타협하기도 한다. 스탈과 정아은 모두 아내와 엄마라는 위치성에 기반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참조되는 텍스트들을 풍부히 다룬다는 데서 책의 기본 골격은 비슷하지만, 이야기의 전개 방식과 주제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빨래>는 막 엄마가 된 스탈이 모교인 버나드 대학 수업을 청강하며 읽어가는 1세대 페미니즘에서부터 주디스 버틀러까지 소위 페미니즘의 정전들과 함께 자신의 개인적이면서 정치적인 경험의 반경을 넓혀가는 이야기가 담겼다면, <거짓말>은 작가가 겪고 느꼈던 각기 다른 일화들로 대부분의 장을 시작한다. 일하는 여성에 관해, 한남에 관해, 전업주부들만의 세계에 관해 등등. 흥미로운 점은 <거짓말>에서 우리에게도 주제적으로 익숙한 앞선 일화들이 돈과 관련된 텍스트들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는 작가가 전업주부를 폄하하는 사회적 인식구조를 자본주의에서 찾고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실비아 페데리치의 <혁명의 영점>이 다뤄진다.

 

두 책 모두 읽기가 어렵지 않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소개되는 텍스트들이 내게는 너무 익숙한 터라, 대신 난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더 좇았고 거기에서 더 흥미를 찾았다. 애초 읽고 쓰는 엄마라는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들의 자취를 살펴보고 싶다는 내 바람도 있었고. 그래서 스탈과 정아은과 정희연이 나란히 병치되는 지점들에선 탄복과 애잔함과 동질감이 뒤섞였다. 스탈: (엄마가 되고)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한 이후 찔끔찔끔 버는 돈은 가정 경제에 그다지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꾸준한 수입이 없다는 게 괴로웠다.” 정아은: “불규칙적으로 입금되는 소액의 고료 외에는 내세울 만한 수입이 없고, 소속된 회사나 조직도 없다.” 정희연: 논문 게재 장려금은 많지 않은 액수다. 간혹 고료나 강연비는 내 용돈 정도밖에 안 된다. 게다가 난 학위를 받아도 대학에서 좋아하는 해외박사가 아니라 비정규직 신세를 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실 <빨래>에서도 <거짓말>에서도 내 삶에서도, 아니, 엄마이자 주부이자 일하는 여성 모두에게 일과 가정의 균형 맞추기는 계속해서 힘들어왔고, 여전히 힘들고,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엄마라는 굴레가 엄마와 주부 이전의 였던 여성들을 더 이상 옥죄지 않는 인식적이고 구조적인 (사실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혁명적이고 요원해 보이는) 변화를 끌어내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선배들의 진솔한 고백들과 성실한 사유가 전달하는 용기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앞에 나와 똑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다소 위안이 되었다”(<빨래>, 174). 스탈이 그랬듯이 난 그들로부터 위안을 얻었다. 집안일을 싫어하는 나도, 아이와의 퍼즐 놀이보다 딱딱하고 난해한 이론서를 읽을 때의 성취감이 더 큰 행복을 주는 나도,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수긍 받는 기분. 이거야말로 책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가 아닐까?

 

덧붙이는 말. 1)<빨래><거짓말> 모두 제목이 참 매력적이다. 특히 <빨래하는 페미니즘>은 국내 번역되며 제목을 참 잘 붙였다는 생각이 드는데, 원제는 <여성 읽기: 페미니즘의 위대한 책들은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Reading Women: How the Great Books of Feminism Changed My Life). 2)<빨래>의 서문에서 여성학자 정희진은 이 책을 내 생애 첫 번째 페미니즘책으로 추천하겠다고 한다. 난 페미니즘과 여성, 엄마, 주부라는 키워드에 관심 좀 둬볼까하는 누구에게나 성별, 연령 상관없이 이 두 책을 권하고 싶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적당함이 한정된 독자들만을 향해있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