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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지금_구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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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31 00:20 조회5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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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지금

 

구설희

 

 

3 아이들과의 인문학 수업. 요즘은 아이들과 옛이야기와 관련한 책을 읽고 있다. 덕분에 옛부터 전해져 온 민담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림책으로도 나오는 <구렁덩덩 새선비><여우누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등의 이야기를 다시 접하기도 하고 익히 알고 있는 <콩쥐 팥쥐><백설공주>를 각 책 저자의 해석으로 새롭게 볼 수도 있었다. 흥미로운 건 저자마다 이야기를 해석하는 관점이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가령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경우 호랑이에 주목하거나 오누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랐는데 호랑이가 엄마의 이면을 상징한다는 해석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오누이가 해와 달이 된 것이 근친상간의 금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은 흥미로웠다. 어찌됐든 저자들은 오누이가 호랑이를 물리치고 해와 달이 된 것은 독립적인 자아의 발현 혹은 다른 차원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라고 비슷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들의 해석을 보며 나도 의문점이 하나 새겼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이야기에서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후자의 이야기 줄거리는 이렇다. 엄마가 외출한 사이 엄마로 분장한 늑대가 아기염소들만 남은 집을 찾아가 아기염소를 잡아먹는다. 배부른 늑대가 잠깐 잠든 사이 엄마와 숨어있던 아기염소 한 마리가 늑대의 배를 가르고 아기 염소들을 구출 한 다음 안에 돌을 집어넣고 다시 꿰맨다. 늑대는 깨어나 우물가에 가서 물을 먹으려다가 그만 무거운 몸이 아래로 쏠려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 모두 아버지는 부재하고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있었다면 오누이와 아기염소는 보다 안전하지 않았을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안에서 이야기가 지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위험에 노출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란 엄마, 아빠, 자녀가 있는 가정을 사회가 당연시하고 편부모 가정, 조부모 가정, 혹은 부모가 없는 경우 등 정상가족외의 가족(혹은 공동체)을 비정상이라 규정짓고 편견이 섞인 시선으로 사회가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인식 뿐 아니라 사회 정책까지 광범위하게 포섭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정상가족 외의 가족은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고 여긴다. 유명한 동화 <빨간머리 앤>도 고아이기 때문에 처음엔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안에서 결핍된 존재인 오누이와 아기염소는 위협이나 두려운 어떤 것에 노출이 되기 쉽다. 그래서 호랑이와 늑대 같은 외부 위협에 쉽게 침범 당하는 것으로 그려진 게 아닐까. 엄마와 아빠 모두 존재했다면 호랑이와 늑대가 엄마로 분장해서 나타나 미숙한 어린아이들을 속임수로 꼬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 안에서는 그들의 남편이 안에 있었다면 총을 들고 나서거나 문을 절대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옆집 아주머니가 이 주인공들을 도와줄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의도하진 않았더라도) 오누이와 아기염소는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옛이야기는 분명 그 시대상을 반영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옛이야기의 여성은 가부장제 안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수동적인 모습을 띄거나 주인공으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이 당연시되던 시대였기 때문에 <우렁이 각시><나무꾼과 선녀>같은 경우 이야기에서 주인공 남성은 굳이 사람이 아닌 우렁이나 선녀와 결혼까지 하여 결핍1)이라 여겨지는 상태에서 벗어난다. 또한 우렁이 각시도 주인공과 같이 살다가 나쁜 왕이 데려가거나 선녀도 옷을 뺏겨 장소를 옮기게 되는 수동적인 모습을 띈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옛이야기란 사람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동력이 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이야기 말고도 많은 작품들은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를 다룬다. 이것은 교화의 역할이나 현실의 감정을 보완하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오누이같은 주인공에게서 용감함과 지혜로움 따위를, 우리가 삶에서 힘듦을 마주쳤을 때 이겨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무의식중에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들이 여태껏 전해지고 그림책으로도 만들어지고 패러디 되는 게 아니겠는가.

 

따라서 옛이야기의 해석은 비평할 지점뿐 아니라 긍정적인 부분까지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새로 해석되고 읽혀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들려지길 바란다. 옛이야기임에도 계속 회자되고 재생산 되는 것은 옛이야기가 가지는 힘을 사회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늑대와 호랑이라는 자본이 사람을 잡아먹는 시대, 우리가 오누이처럼 염소처럼 용기 있고 지혜롭게 삶을 잘 일구어나갈 수 있기를, 내가 체현하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또한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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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211, “짝이 없는 결핍의 상태에서 이상적 배필을 만나 결연을 이루었다가 금기의 위반으로 시련을 겪는다.”라는 문장 참조 

 

 

구설희:

어린이 전문서점에서 일하며 젠더와 동화에 관심이 많다. 에세이집 <여름 이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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