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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근본주의07] 노인과 바다_정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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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802회 작성일 20-12-1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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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근본주의07]

노인과 바다

정진리

 

 

*<소설 근본주의>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소설로 풀이하는 편협한 코너입니다.

 

노인과 바다는 노년의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쿠바 코히마르에 정착한 지 13년 되던 1952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소설은 분량이 길지 않고 아주 단순한 줄거리를 담고 있다. 84일 동안 물고기를 낚지 못한 노인이 작심하고 아주 먼 바다까지 나가본다. 그러다 아주 큰 청새치를 만나 사흘간 사투를 벌이고 돌아오는 내용이 끝이다. 내 강의를 스쳐 지나가는 몇몇 학생은 제목에 끌렸다가 이런 단조로운 내용에 실망하고는 한다. 어쩌면 삶의 반짝반짝함만 보고 싶을, 삶의 끝자락에 무엇이 있을지 관심 없는 20대 초반 학생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주제의식일지도 모른다.

노인과 바다에는 강렬한 문장이 하나 등장한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이다. 일견 보기에는 헷갈린다. 파멸하는 것이 곧 패배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일테면 독립운동가는 어떤가. 삶이 파탄날지언정 그는 패배하지 않았다. 이 소설 역시 파멸과 패배가 분명히 구분된다.

바다로 나간 주인공 산티아고는 망망대해에 홀로 서 있다. 그는 경험 많은 어부지만 이제는 아끼는 조수마저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끝없는 바다 한복판에 홀로 있어보았는가. 아마도 굉장한 외로움, 존재적인 고독에 가까운 사무치는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산티아고는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한다. 사흘 동안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산티아고는 청새치를 친구라 부른다. 생사여탈권을 두고 맞서싸워야 하는 적을 곧 친구로 명명하는 관계 역시 그의 고독을 슬그머니 드러낸다. 결국 그는 힘이 다 한 청새치를 낚는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되지만, 어디 소설이 그렇게 쉽게 끝나는가. 피냄새를 맡고 여기저기서 상어가 몰려와 한 입씩 살점을 베어물고 간다. 산티아고가 노를 몽둥이 삼아 쫓아내보지만 어림도 없다. 항구에 정박할 무렵에 청새치의 배는 뼈만 남은 채 훤히 비어 있다. 거대한 청새치와의 사투에서 이겼지만, 시장에 내다 팔 살점은 없다. 그는 아무 것도 낚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력을 다한 노인은 사자꿈을 꾸며 어쩌면 죽음일지도 모를 잠에 빠져든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애써 그 사실을 망각하며 매일 최선을 다해 산다. 산다는 건 참 가혹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만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도 우리는 모든 것을 내놓고,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한 채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의 마지막 고기잡이 여정은 그의 한평생 전체를 제유한다. 그토록 모든 에너지를 탕진했음에도, 종국에는 상어 떼에 뺏겨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다. 노년에 이르러서야 발견할 수 있는 산티아고의 서사이자 헤밍웨이의 감각이다.

산티아고처럼 내 아버지 역시 뱃사람이다. 한평생 남태평양에서 참치를 낚았다. 물에 1년 반 나가계시면 뭍에는 6개월 정도 머물렀다 가시곤 했다. 뱃사람의 애환이라는 게 참 있는지, 잔뜩 벌어놔도 뭍만 돌아오면 돈을 마음껏 쓰셨다. 은퇴하고 나니 벌어놓은 돈은 온 데 간 데 없다. 자식들을 장성하게 다 키워냈다는 것이 그나마 위로겠지만, 수십 년간 선장 노릇을 했음에도 돈이 없어 작은 배 한 척의 주인도 되지 못한다니 허망하다면 허망한 인생이다. 그러나 내 아버지의 눈빛은 패배한 자의 그것이 아니다. 삶이 갈수록 초라해지고 있지만 내 아버지는 패배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