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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장10] 3년차2_윤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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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662회 작성일 20-12-1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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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을 곱씹던 나날, 최준용 씨는 보았다. 도서관의 커다란 책장 하나가 쓰러지는 장면을. 쓰러진 책장은 다른 책장을 쓰러뜨리고, 책장이 도미노처럼 연달아 쓰러졌다. 최준용 씨의 마음에 어떤 상쾌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눈을 뜨니, 모두 꿈이었다.

  그 꿈 이후로 최준용 씨는 업무를 보면서도 책장을 힐끗거렸다. 부쩍 피곤했던 나날, 팀장의 부름을 받았던 어느 날, 이용객에게 불만을 들었던 그 날. 최준용 씨는 홀린 듯 책장 앞에 섰다. 곧장 책장을 밀어보았다. 어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허벅지와 등에 힘을 주어 힘껏 밀었다. 비로소 책장이 하나 쓰러지고, 그 책장이 다른 책장을, 또 그 옆에 멀쩡히 서있던 책장을. 마침내 모든 책장이 쓰러졌다! 책장은 품고 있던 책을 모두 토해내고 바닥에 누웠다.

  최준용 씨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메마른 마음에 촉촉한 새싹 하나가 뿅, 하고 자라난 느낌. 팀장이 멀리서 물었다. 새싹을 전자레인지에 넣는 듯한 말투였다.

 

  “최준용 씨, 바빠 죽겠는데 지금 뭐해?”

 

  책장은 다시 세워졌다. 불과 이틀만의 일이었다. 최준용 씨는 물론, 팀장과 다른 사서들과 경비원까지 합세해서였다.

  최준용 씨는 다시 업무를 보았다. 신간 도서를 등록하고, 분류 번호와 도서기호를 작성하고, 반납 도서를 차례대로 정리했다. 모두 꿈이었나. 자신이 책장을 밀었을 리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책장은 멀쩡히 서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최준용 씨, 누구나 다들 그래. 한 번쯤은 책장을 밀어본다고. 그러니 업무나 열심히 봐.”

  팀장이 심상하게 말했다. 최준용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하는 일이었구나. 내일이면 크리스마스 연휴다. 연휴가 끝나면 곧 새해가 되고, 최준용 씨는 3년차에 접어들 것이었다. 책장이 우두커니 최준용 씨를 내려다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