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빨

  • 자료실
  • 글빨

[2020영화의 관객들10] My Own Private Cinema_변혜경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720회 작성일 20-12-10 09:50

본문

[2020영화의 관객들10]

My Own Private Cinema

금지옥엽; 나의 영화 열편, 물질로 남아있을 소중한 나의 영화들

변혜경

 

 

(La Strada , 1954) ; 페데리코 펠리니와 줄리에타 마시나 액자, 그리고 나뭇가지 이미지

어울려 사상사세미나, 영화세미나를 하면서 고군분투하던 시절이 벌써 13~4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첫 영화세미나에서 본 첫 영화가 펠리니 감독의 영화다. 초봄의 기운이 완연한 한산한 대학가 주말 함께 만나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 내 눈높이에서 이해가 쉬웠고 감동 깊었던 작품이라 늘 기억한다. 펠리니의 주요 작품들을 모두 본 후 기념의 의미로 줄리에타 마시나가 연기하는 자취를 따라 맹렬히 촬영하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사랑과 열정이 담긴 사진이 액자로 남아 있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항상 영감을 얻는 줄리에타 마시나, 그녀가 영화 속에서 나뭇가지 흉내를 내던 장면은 내 프로필 이미지의 하나였다. 그렇게 바람은 소망하는 대로 불것이다.

 

사랑이 찾아온 여름(my summer of love, 2004) ; sns 계정 아이디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을 처음 알게 된 영화다. 우리들의 만남은 처음엔 투명한 것처럼, 영원히 그 투명함이 영속될 것처럼 마음을 부풀게 하지만, 사실 어느 한쪽 혹은 양자의 곡해, 혹은 연기술로 유보된 허상일 뿐임을 보게 한다. 내게 사랑의 열병에 빠져버린 대책없는 모나의 마음, 관계의 미묘한 균열을 감각하게 한 영화로 원 제목과 번역 제목의 미묘한 차이가 영화적으로도 의미심장해서 어감이 좋은 원제를 인스타그램 계정 아이디로 살려두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 ; sns 계정 프로필 이미지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영화 중 하나가 되었지만 상처가 파고들어 침묵의 곱사등을 만든 것 같은 케이시 애플렉의 낮은 움직임, 전처 미셸 윌리엄스와의 대면 장면이 기억의 책갈피처럼 남아있다. 상처는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것, 시간이 해결해주지도 않는다는 것, 비루한 일상은 일상으로 그냥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임을 직관하게 해 준 영화다. 나의 sns 생활 역시 그리 특별할 것 없다는 무언의 고백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도 담담하게 받아들이자며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 이미지로 남겨 두었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Like Someone in Love, 2012) ; sns 계정 소개말

모퉁이극장에서 활동가들과 영화모임을 하면서 본 영화다. ‘알면 알수록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라 말한 누군가처럼 영화를 보고 있는데 다른 것을 보고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이 영화가 주는 매력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원제의 어감이 좋아서 영화에 빠진 것처럼을 의도하며 Like someone in movie를 인스타그램 계정 소개말로 살려두었다.

 

오프닝 나이트(Opening Night, 1977) ; sns 계정 첫 프로필 이미지

영화세미나를 하던 동학의 소개로 존 카사베츠 감독을 알게 된 첫 영화이다. 감독과 지나 롤랜즈의 관계는 펠리니와 비교될 것도 같다. 배우로서의 절정을 지난 중년의 여성이 현실과 꿈의 경계 사이에서 자신과 싸우며 자기를 지켜내는 영화다. 오늘은 바로 오프닝 나이트, 이제야 본 무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언젠가 무대 앞에 당당히 서서 손을 맞잡고 인사하는 그녀를 오마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카카오톡 첫 프로필 이미지로 올려두었다.

 

브루클린(Brooklyn, 2016) ; sns 계정 프로필 이미지

극장에서 볼 수 있어서 행복했던 영화다. 내가 가진 작은 마음씨앗 하나가 낯선 곳에 떨어져 뿌리내리는 여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시얼샤 로넌이 브루클린의 생활이 힘겨워질 때쯤 동향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가서 아일랜드 민요를 들으며 힘을 내는 시퀀스는 정말 아름답다. 우리는 모두 방랑자,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곳이 고향이라 다독여보려 카카오톡 프로필 이미지에 한동안 담아두었다.

 

행복한 라짜로(Happy as Lazzaro, 2018) ; sns계정 최근 프로필 이미지

영화우화를 관념에 물들지 않고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내는 영화가 있을까 라며 숨죽이며 본 영화다. 행복은 언제나 너무 일찍 오거나 너무 늦게 도착한다. 그럼에도 오늘을 가난하게 살고 있는 라자로는 부활할 것이다. 다시, 라자로처럼이라는 말을 주워섬기며 지금도 나의 카카오톡 프로필 이미지로 살아 있다.

 

조조래빗(Jojo Rabbit, 2019) ; 온라인 닉네임

암울한 시절을 코믹한 판타지로 채색해도 영화가 가진 유쾌함의 미덕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조조라는 소년의 별명이 영화적 느낌과 맞아떨어지고 입에 착 감기며 달라붙는 느낌이 좋아 이후에도 계속 입에 맴도는 소리가 되었다. 힘든 시기를 조조처럼 통과해보자며 어느 날 이른 새벽에 만든 온라인 별명이 조조다. 조조는 그렇게 닉네임으로 남아 있다.

 

35럼샷(35 Shots Of Rum, 2008) ; 노트북에 저장해둔 dancing씬 영상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때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다독여지는 기차길 오프닝 씨퀀스를 사랑하는 영화다. 퇴임을 앞둔 아버지와 딸, 남자친구, 이웃 중년여성이 비오늘 날 클럽에 갇히게 되면서 함께 추는 춤씬은 시선과 동작 사이사이 촘촘한 의미를 숨겨둔 듯 매혹적이다. 춤출 때 흐르는 'nightshift'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 이 춤시퀀스 영상만 따로 저장해 두고 다시보기를 한다.

 

린온피트(Lean on Pete, 2017) : 노트북에 저장해둔 ending씬 영상

워호스(War Horse, 2011) 이후 말이 등장하는 최고의 영화로 꼽고 싶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행의 연속인 나날들, 그 속에서 말과 함께, 말이 되어 계속 달리는 찰리의 움직임을 응원하며 따라간 길의 끝에서 만나는 결말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의 바닥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찰리와 함께 천천히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엔딩씬은 35럼샷과 함께 노트북에서 꺼내어 다시 보는 소중한 영상으로 저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