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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영화의 관객들09] 조약돌 이야기_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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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2-03 12:33 조회7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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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영화의 관객들09]

조약돌 이야기

변혜경

 

 

최근 원도심예술창작공간 또따또가 10주년 기념책자 제작을 위해 서면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인 40계단시민극장도 마무리 중인데 성과자료집에 올해로 3년째 운영해 온 소감을 정리해 달라고 한다. 부산국제교류재단에서 인도네시아 연수생에게 모퉁이극장의 관객문화활동을 소개하는 자리도 이어졌다. 2020년의 끝자락에서 이러한 질문들에 답변을 정리하다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송구영신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누군가 2020년을 너무 쿨하게 보내는 것 아니냐 웃는다. 코로나 때문에 계획했던 뭔가를 제대로 해 본 것이 없는데 그렇게 보낼 수 있냐는 말인 것이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크게 없어서, 다가오는 결말의 무대 앞에서 가능한 것이 조금씩 떠나보내는 일 아닐까 라며, 던져놓은 일들을 하나씩 매듭짓고 내일을 기다린다고 했다. 엔딩 크레딧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2011년에 설립되고 12년에 개소를 했으니 모퉁이극장도 근 10년이 가까워간다. 2010년부터 시작된 모퉁이극장의 전사(前史)를 끌어올리면 10년이 넘는다. 그당시 모퉁이극장이라는 이름도 있었고 취지와 방향, 활동계획이 모두 세워져 있었으니 물리적 장소는 없었지만 극장이 유효했던 시간들이다. 활동한지 5년쯤 지나가니 문화예술단체가 10년을 버틴다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걸음 한걸음 걸어왔고 조약돌 하나씩 쌓는 마음으로 매년 새해를 맞이했다. 이번 한해는 잘 넘어갈 수 있을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꿈을 함께 꾸며 응원을 나눌 멋진 관객들을 만나리라는 설렘을 안고 쉬임없이 걸었다.

 

모퉁이극장은 영화를 매개로 우리들 서로의 활동을 조명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익명의 관객이라고 말하기엔 아쉬운, 끓어오르는 감흥을 나누고픈 우리들, 뭔가 부끄러운 듯 영화의 주변부를 서성이지만 영화와 접점을 만들며 살아가고픈 평범한 우리들이 써내려간 순수한 열정과 고운 마음들이 나이테처럼 쌓여진 곳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시간, 매순간들이 기적 같다. 모두가 모퉁이극장을 찾고 응원해 준 많은 이들의 존재로 가능했다. 내가 좋아하는 모퉁이극장의 모토 중 하나인 "make a better place", 서로에게 영감과 선한 기운을 주고받고 좀더 나은 곳, 좀더 멋진 관객이 되려고 노력했기에 가능한 시간들이라 여긴다.

 

모퉁이극장 활동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시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작은 조약돌 하나를 쌓은 시간이었다고 말하겠다. 모든 좋은 일에는 정성과 시간,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직장인, 상인, 주민, 예술가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독특한 장소감을 가진 40계단 일대에서 오랜시간 이분들과 교류하면서 문화예술활동을 펼쳐본 것은 행운이었다. 하는 일도 취향도 문화도 다르지만 영화를 통해 알아가고 어울렸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러한 취지를 살리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만들어온 시간들이 우리 일상에 빛나는 작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모퉁이극장이 해온 공부의 방향도, 활동의 신조도 조약돌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풍경은 위험하다. 10여년을 한 곳에 서 있다 보니 모퉁이극장 활동의 외관만 보고 큰 예술전문단체인 것처럼, 소비자단체인 것처럼 왜곡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풍경의 상상속에서 세운 잣대로 아쉽다고도 하고 실망했다고도 한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지 않느냐 라고도 한다.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모퉁이극장이 영화에 목마른 이들의 쉼터가 되고 싶어했는데, 그 이상으로 충족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모퉁이극장은 마음이 없으면, 손길이 없으면, 상호인정과 지지가 없으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여느 평범한 중소규모 문화예술단체에 불과하다. 모서리, 모퉁이, 언제나 주변부에 있지만 우정과 공감의 끈으로 살아갈 힘을 주고받으며 시민들의 삶과 문화를 살찌우려 함께 연대한다.

 

영화인은 영화를 만든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든다. 모퉁이극장은 무엇을 만드느냐고 한다. 응원, 우정, 신뢰와 연대, 그리고 관객이라는 맥락 안에서 지역 시민들이 문화적으로 동시대를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영역, 새로운 세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하겠다. 물질적 성과주의에 갇힌 이들은 동문서답이라며 외면하고 다른 답을 요구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바흐친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도, 작품도, 모퉁이극장의 활동도 보이지 않는 이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충실한 응답들이라는 점에서 하나다. 그러한 자부심으로 활동을 해 온 시간과 결과물들을 나는 부정할 수 없다.

 

존 휴스턴 감독의 놀라운 걸작 <아프리카의 여왕>(The African Queen, 1951)을 보면 험프리 보가트와 캐서린 햅번이 아마존 강 늪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림보(Limbo) 상태에 빠진다. 이들이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감독은 카메라를 줌아웃 시켜 바로 몇십 미터 앞에 대양이 펼쳐져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응원의 이미지다. 그 장면을 볼 때면 뭉클해지면서 관객들에게 마치 힘을 내라고 하는 것 같다. 지금의 위기가 전도유망한 세상과 이들을 만나기 위한 문턱이라는 어둔밤이라고 다독거려본다. 까만밤, 아주 까만밤 말이다. 그럼에도 희망고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어떻게 헤쳐나갈까 라는 두려움이 쉴새없이 짓쳐들어오지만 다시 힘을 내어본다. 모퉁이극장이 존재하든 사라지든 지금까지 쌓아올린 조약돌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또 내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가든 모퉁이극장은 나의 정신적 고향이 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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