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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넘기는 소리07] 종합_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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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0-15 13:54 조회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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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넘기는 소리07] 

종합

​지하

 

 

종합

 

칸트 이전의 두 철학적 전통, 즉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는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며 화해되지 못했다. 합리주의자들은 이성을 강조하였으나 그것을 맹신한 나머지 경험을 경시하였고 개념 풀이로서의 사변 철학에 빠져있었다. 반면 경험론자들은 오직 경험만을 고집하였고, 종점에서 흄이 그 모든 것을 신기루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칸트는 철저히 흄의 방법론 따르면서도 흄이 극복하지 못한 세계를 다시 구축하려 한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두 전통을 종합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보자.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임마누엘 칸트 ( 1724 ~ 1804 )

 

칸트는 물자체(物自體)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말 그대로 사물 그 자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보자. 거미가 보는 사과와 개가 보는 사과, 그리고 인간이 보는 사과 중 어느 것이 진짜 사과에 가까운가? 정답은 알 수 없음이다. 거미는 거미대로 개는 개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사과를 볼 따름이기에 무엇이 진짜 사과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짜 사과를 인식하는 것은 포기해야한다. 다만 여기서 아이디어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눈으로 사과를 본다는 것, 즉 우리는 인간이기에 지식들은 인간의 방식대로만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종의 필터가 기본적으로 씌워져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좋다. 태어날 때부터 씌워져 있는 이 필터가 세계를 바라보는 통로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경험을 가능케 하는 가능조건이다.

칸트가 집중한 것이 바로 이 필터이다. 대상에 대한 인식 조건을 바깥에서 찾지 않고 이미 인간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이 인식틀에서부터 찾는 것이다. 이는 소박해보이지만 대단한 한걸음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전까지의 철학자들은 바깥의 대상을 중심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칸트는 주관을 중심으로 질문을 바꾼다. 칸트는 더 이상 대상에 대해 묻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 주어지는지에 집중하게 된다.

칸트는 선험적 종합판단’(항상 참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지 묻는다. 여기서 선험이란 경험에 앞서 있다는 뜻이다.(우리는 숫자를 경험하지 못하지만 수를 알 수 있다.) 종합판단의 의미를 알아보려면 우선 분석명제종합명제를 알아야 한다. 분석명제는 아무런 지식을 담고 있지 않는 명제를 의미한다.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라는 문장은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여기서의 술어는 주어를 그저 풀어쓴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종합명제는 새로운 지식을 담고 있다. “홍길동은 총각이다.”라고 했을 때 홍길동이라는 주어를 아무리 분석해도 총각이다.”라는 술어를 가져올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은 새로운 지식을 담고 있는 명제이다. 칸트가 보기에 수학적 법칙, 물리학적 법칙은 항상 참된 지식이며, 이것은 이미 우리 에 있다고 믿었다. 그 어떤 경험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가능조건, 즉 판단형식에서 답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필연적이고 일관된 지식이 가능할까? 그것은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들을 필연적이고 일관된 형태로 만들어주는 판단형식(인식틀)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 판단형식을 연구하는 것이 인간이 진리로 가까이 가게끔 만들어주는 문이라고 칸트는 생각한다. 쉽게 말해 지식이 가능하려면 지식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탐구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리하자면 외부의 정보들이 우리의 인식틀을 거쳐 일관된 형태로 만들어 지기에 보편적 지식이 가능한 것이다. 칸트는 이렇게 선험적 형식이라는 틀을 마련하여 흄이 쥘 수 없었던 과학적 지식의 확실성을 확보한다. 더 나아가 칸트는 이성 안에 있는 보편성에 대한 기준으로 인식(순수이성비판)뿐만 아니라 도덕(실천이성비판) 그리고 미적 판단(판단력비판)에까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담

 

칸트가 살던 18세기. 몽블랑 정상에 악마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위스의 과학자 소쉬르가 내건 상금 덕분에 몽블랑 정상에 인간이 처음 오른 것 역시 1786년의 일이다. 우리는 그 이후, 산 정상에 악마 따윈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등산의 역사는 이렇듯 인간의 이성적 활동 혹은 합리적 사고와 함께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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