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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1_박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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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113회 작성일 17-07-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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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7.14 초단편소설

사과 1

박창용

 

 

1/사과, 빌어먹을 사과였다, 홍옥이나 국광처럼 흔히 우리의 소비를 지배하는 불그스름한 사과와 굳이 청사과라고 일컫게 되는 푸른 아오리 사과, 어쨌거나, 그러한 모양새들을 갖추었을, 사과였다, 빌어먹을, 그 사과를 우리는 다들 손에 하나씩 쥐고 있다, 뜯어먹기 위해서다, 아니다, 베먹기 위해서였나, 아니면, 깨물기 위해서,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사과를 하나씩 쥐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홍옥이거나 국광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그 쪽이 마음이 편하니까,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렇게 여기는 쪽이, 내 마음과 당신들의 마음에 편리하기 때문이므로, 그러한 사과를 쥐고 있다, 나는 이것을, 뜯거나 베거나 깨물거나 아니면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그저 손에 쥐고 있을 것인데, 아무래도 당신들이 덜 불편한 쪽이 무엇인지 우선 파악한 후에 더욱 불편한 쪽으로 행동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러모로 빌어먹을 사과다, 그렇다고 감탄하는데, 누군가 2/꿀사과! 외친다, 비명과 같다, 나는 놀랍다, 외칠 줄 아는 것, 비명이라는 것을 저지를 줄 아는 누군가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탄하다가도, 그 뜻을 헤아려보자면, 아니, 지금, 사과 안에 꿀이 있다고, 그러면 꿀사과라고, 다른 누군가가 덧붙이기까지 하는데, 빌어먹을 사과에 빌어먹을 말들이 자꾸만 붙는다, 빌어먹을 사과에 잘난 꿀이 있든 말든 나는 개의치 않겠노라 악을 쓰는데 당신들은 나의 말을 개의치 않으므로 나는 서글퍼진다, 따라서 사과를 쥔 손이 부르르 떨린다, 사과 안에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 알 수 없는 고작 꿀 때문에 나의 손, 나의 일부, 나의 전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일부, 그 손이 부르르 떨린다, 어떡하랴, 사과를 쥔 손은 그 숙명을 다해야할 뿐인 것을, 따라서, 나는 우리를 항상 갈등으로 몰아넣는 이 사과를, 빌어먹을 사과라고 중얼거리다가, 이렇게도 잘난 손들, 사과를 쥔 손들, 사과를 쥔 손을 가진 우리들이 차라리 사과를 재배하든지, 아니면 그 무엇이라도 재배를 하든지, 최소한의 생산성을 보장할 만한 행위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생산적이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제법 논리적인 양 전개하면서, 사과를 손에 죄는 것 외에는 도무지 하등의 기능도 없는 우리들이, 사실 그 빌어먹을 짓거리 외에 일말이라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역설하지만, 역설하는 내가, 아니, 나든 누구든, 어차피 사과를 쥔 채로 이걸 뜯거나 베거나 깨물거나 아니면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쥐고 있는 종자들이, 어떤 진리를 설파할지언정 아무짝에 쓸모없는, 아니, 어차피 모든 것이 쓸모없어진 마당에, 3/심지어는, 그 와중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행위, 사과를 어떻게 해보는 것을 포기하고, 사과 안에 꿀을 맺고자 노력하는 쪽으로 다들 마음이 기우는 것이 나로서는 몹시 언짢고 서글퍼서, 이럴 바에는 사과의 변형을 노려보자, 잼이라든가 주스로 나아가는 전통을 수호한다든가, 요즘 유행하는 샹그리아에 담그는 식으로 전위적인 활동에 동참한다든가, 빌어먹을, 아무튼 꿀사과 같은 건 좀 문제가 있지 않느냐, 본디 내가, 사과를 두고 어찌할지 모르는 것이 유일한 기능인 내가, 아니, 그저 사과를 들고 있는 것이었던가, 어찌됐든 나뿐만이 아닌 우리가, 좀체 용납될 수 없는 범위까지 사고하고 발설하게 된 것이었다, 고작 어떤 절규, 꿀사과를 갈망하는 절규 때문이므로, 나는 꿀을 저주할 것인지 사과를 저주할 것인지 찰나의 고민을 억겁인 양 행위한 끝에, 일단은 우리의 기능을 다시 되새기며, 그 어떤 행위도 변형도 내면적 생성이라든지 생산적인 방향이라든지 그러한 것들을 배제하며, 단지 우리가 사과를 들고 있으므로, 이 빌어먹을 사과를 들고 있으므로, 빌어먹을, 이것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지금 들고 있는 사과로 되어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우리가, 왜냐하면 우리의 유일한 행위가 관련된 유일한 것이 사과이기 때문에, 그것 외에는 그 어떤 증명도 없으므로, 한편 어떤 돌출들을 온전히 망각하며, 비명이든 절규든 외침이든 그런 것들을 순조롭게 저버리고서, 4/어쨌든 여기저기서 정수리에 꼭지를 달고 어떤 손들에게 주렁주렁 매달린 우리를, 빌어먹을 우리를 위하여, 우리는.

 

 

 

- 인류가 활자를 이용하여 자행해온 모든 시도와 모험을 답습하려는 목동 지망생. 서울에서 개인으로 생존해내기 위해 안전하면서도 전위적인 음주 행각을 연구하여 실천하고자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