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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02] 이건 더 이상 ‘과학의 달’에만 그리던 그림이 아니다_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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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495회 작성일 20-07-0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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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02]

이건 더 이상 과학의 달에만 그리던 그림이 아니다

박소연

 

 

  나는 대학생시절, ‘열심히까진 아니라도 부지런히공부했다. 간호학과는 4년 뒤에 임상현장에 바로 투입되는 간호사를 양성해야하기 때문에 교과목 중엔 실습에 해당하는 교과목이 많다.

  내 경우, 일학년 때는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과 함께 교양수업도 듣기도 했지만 이후엔 오직 전공과목 공부만 좇기도 바빴다. 돌이켜보면, 교양수업을 듣던 그즈음이 대학생의 여유, 로망이 실현되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교과의 비중은 확연히 줄어들고 기초의학이나 기본간호학을 좀 더 많이 듣게 되는데, 이때 첫 실습인 기본간호학실습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우리학교는 의과대학 4층 건물 왼쪽 복도 끝에 기본간호학 실습실이 있었다. 우리는 헉헉대며 계단을 올라 실습복으로 환복하고는 각양각색의 화려한 머리도 묶고 실습실 앞쪽 테이블에 앉아 수업을 맞았다.

  시작은 늘 간호사로서의 태도나 책임감으로 시작해, 그날의 사전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해야만 우리는 다음 단계인 실습공간에 드디어 입성할 수 있었다.

  나는 수업과 일과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친구가 다섯 있었는데, 실습은 늘 소수정예로 진행되어서 그중 한 셋 정도만 같은 실습실을 이용했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모형을 두고 실습을 했지만,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과 같이 화려하고 기능 좋은 모형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에는 귤을 가져와서 주사바늘을 찔리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혈압측정 같은 것은 무조건 실습실 짝지와 했고, 내가 측정하고 부르는 값을 듀얼청진기환자 몸에 대는 것은 하나인데, 귀꽂이(Earpiece)는 두 명이 함께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기기를 통해 듣고 계신 교수님께서 맞다’, ‘아니다라고 해주시면 그것이 바로 내 점수가 되었다.

  그즈음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습은 실습 모형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교수님이 보시는 앞에서 서로에게 주사연습을 해보거나 상급학년으로 진학해 학교부속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는 간호를 직접 관찰하고 아주 운이 좋으면 해보기도 했다. 우리는 너무나 신기한 물건이 많은 그 실습실이라는 공간이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사실, 병원에 취직한 후로는 오로지 밤샘 근무를 하는 게 힘들어 해방구를 찾고자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참 신기한 게,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재미없었던 공부도 내가 속한 임상현장과 짝지어 생각하니 재미있게 느껴졌다.

 

  지금은 몇 해 전, 한 대학에 정착을 해 나와 같은 학생을 길러내고 있다. 내가 처음 맡게 된 과목은 기본간호학 실습이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했다. 요즘은 아주 세부적인 신체부분까지도 실감나는 모형으로 제작되어 있고, 피부도 그저 딱딱한 도구의 느낌이 아닌 반들반들하고 매끄럽기까지 했다. 근육주사 모형은 심지어 엉덩이 주사를 정확한 부위에 놓으면 불이 들어오기도 했고, 혈압측정은 태블릿을 이용하여 할 수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 너네 진짜 부럽다, 어쩜 이렇게 멋진 도구들이 발명되었을까?”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나 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진짜 이런 게 그때도 있었더라면하고 푸념 섞인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내가 속한 학교가 학생들이 실습할 수 있도록 많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덕이기도 하지만, 이즈음의 학생들은 내 기준으로는 최첨단 기계로 연습을 하고 간호사가 되는 것이다.

  올 겨울, 심상치 않던 폐렴이 결국에는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이 되었고, 2월 중순부터 예정되어있던 학생들의 실습은 전면 중단되었다. 간호학과는 국가고시를 치기 전 1,000시간의 실습을 완료해야만 한다. 간호사라는 전문직을 배출하기 위한 엄격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실습을 교내에서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때 내가 속해 있는 한 학회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멘붕인 상황에서 Web-seminar를 개최한 것이다. 개최내용은 비대면 실습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처음에는 비대면으로 실습이 가능하기나 할까라는 생각을 했었고, 4시간 넘는 시간동안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오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공상과학 글짓기나 사생대회가 열리면, 화상으로 하는 회의 또는 가상공간에 대한 내용이 단골 소재였다. 그땐 그저 허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5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접속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현재가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그곳에서 비대면 온라인상으로 접속해 나의 아바타로 대상자와 면담을 하거나 건강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온라인상의 시뮬레이션을 이용해서 혈압을 측정하고 처방을 확인하고 투약을 하고 환자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마치 미션을 해결해 나가는 게임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세미나를 주체하신 교수님은 조금 느리고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은 참석자들에게 요즘 학생들은 이런 온라인 공간에서 움직임이 익숙하시기 때문에 교수님들께서 학생들 걱정은 안하셔도 된다며 용기를 주셨지만, 참석자 가운데 젊은 축에 속한 나조차도 어려움이 겪고 있었으니 다들 오죽하셨을까. 내가 박사과정을 나는 동안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간호를 마스터하기 위해 학회도 다니고 공부도 했는데, 그것이 온라인상으로 까지 들어가 버렸다니, 나는 또 한 번 발전도 좋지만, 그만 멈춰줬으면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님 좀 천천히 가든가

 

  요즘 어느 곳에 가나 post-corona virus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Untact 또는 New normal 이라는 말을 빼놓을 수고 없다. ContactUn을 붙인 신조어는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단순히 온라인 채널시장의 확대가 아닌 온라인 강의 재택근무 같은 것이 훅하고 우리 속으로 들어와 버리는 것이다. 온라인이라는 환경에서 쓸데없는 것이라 여겨지는 것은 점차 줄어들고 본질적인 것에 더욱 집중하면서 효율을 중요시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인간이 너무 효율만 추구한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 서글프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절충안을 찾아가고 또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니 그렇게 되도록 모두 함께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코로나를 통해서 우리가 순간순간의 행복을 느끼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받아들이는 오늘의 변화가 아마도 나의 다음 세대에게는 익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형태의 변화일지라도, 그것이 우수한 간호사를 양성해 사회로 내보내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내일이라도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내 유년에 그렸던 과학의 달그림이 가뭇 떠오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