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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기_이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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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06 13:15 조회6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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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4.07

변성기

이세윤

 

 

어릴 적에 검도장을 다닐 때 만났던 한 살 위의 형 B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그는 여타의 가벼운 농담이나 지껄이며 오락실을 전전하던 형들과는 달리 항상 진지한 화젯거리로 내게 말을 걸곤 했다. 군사기밀이라면서 엄중한 표정으로 한반도의 미래에 관해 설명하기도 했고 3.5인치 디스켓(1.44메가) 여러 개로 분할된 게임 프로그램을 내게 복사해 주기도 했는데 나는 그 보답으로 내가 조립한 라디오를 선물했다. 당시에도 크기가 너무 크다고 느낄만한 포터블 라디오에 이어폰이 제공되는 구성이었다. 그는 그런 라디오를 공짜로 받을 수 없다며 오천 원을 내게 주는 것이었다. 그때 약간의 우월감이랄까 진지한 자의 바보스러움을 발견한 기쁨이 찾아와 어리둥절했다.

 

그 오천 원으로 나는 다시 라디오 조립키트를 샀고 완성품을 다른 친구에게 팔기를 반복, 그 가격도 점차적으로 올려가며 나는 마진을 챙겼고 더불어 납땜 실력이 하이닉스 반도체 직원 수준까지 올랐지 않나 싶다. 라디오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필승'을 들으며 또 다른 라디오를 조립하던 어느 날, 방으로 들어온 엄마의 추궁에 결국 라디오 제조 및 유통업은 막을 내렸다. 여러 개의 재고품의 존재 이유를 둘러댈 방법이 없어 엄마에겐 필승할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설레었던 나의 마음을

아름답던 기억들을 없애놓을 꺼야

밤새우며 그리워한 많은 날들을'

 

라디오 조립 수업 재료비라고 속이며 돈을 받아 내 라디오를 구입했던 친구들 중에 누군가가 제 엄마에게 거짓이 들통났고 그 사실이 우리 엄마에게 통보된 것이었다. 한동안 상당한 몰입과 고양감을 즐기던 나는 금세 빈털터리가 된 기분이었다. 돈은 꽤 많이 모여 있었지만 사실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뒤늦게 라디오 구입 사실을 들킨 장본인이 최초의 구입자 검도장의 B형임을 알게 되었다. B형은 똑똑하지만 역시 보수적인 집안의 무서운 부모님을 당해내진 못했을 것이라는 나름의 추측을 했다.

 

어느 날 그와 대련을 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한 살 차이라도 신체조건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편이라 위축되어 있었으나 동년배에게 지는 것보다는 자존심이 덜 상할 것이어서 적극적으로 여기저기를 쳤는데 허리를 치려하면 그는 팔을 들어서 허리를 내주고 머리를 치려하면 그는 내 손목을 노리느라 머리를 내주며 손목 머리 허리를 차례로 난타 당했는데 대련이 끝나고 나서야 미안함이 찾아왔다. 그 이후로 왠지 그는 진중하고 어른스러움을 버리고 이상한 나쁜 형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아놔~'하는 감탄사가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처음 봤다. 안철수 후보처럼 목소리도 어느 순간 바뀌었는데 그것 또한 나쁜 형 행세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변성기가 올만한 시기였던 것이고 목소리의 변화가 오히려 다른 행동변화를 가져왔던 것은 아닌지.

 

안철수 후보도 어쩌다보니 뒤늦게 변성기가 왔는지 2차 성징으로 인한 내적 변화가 상당히 역동적인 것 같다. 손석희 앵커의 물음에 '나는 그냥 소신대로 할 테니 국민들은 평가하면 된다'는 발언을 반복하며 일축하는 그의 표정이 왠지 사춘기 B형을 닮아있는 것 같다. B형은 내 기준에서는 조금 모자란 것 같았지만 지금은 변호사가 되어 어떤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지나보면 나는 항상 몰입거리를 찾고 남들보다 더 엑스터시를 느끼며 성장했고 항상 어디쯤에 정체된 삶을 필연적으로 살고 있지 않나 싶다. 항상 내게 부여된 여건 안에서 과한 재미를 느끼는 동안 B형과 같은 인상을 가진 부류들은 다 잘 성장해서 어마어마한 관문도 통과했다. 어쩐지 안철수를 업수이 여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 <함께 가는 예술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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