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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리며 나아가는 사람들_백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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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218회 작성일 17-06-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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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6.22 서평

휘청거리며 나아가는 사람들

데이비드 브룩스의 <인간의 품격>을 읽고

백지영

 

 

나는 뭔가 훔치고 싶은 욕망을 느꼈고, 그렇게 했다. () 아주 고약한 일이었고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타락하는 게 좋았고, 잘못을 저지르는 게 좋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철없던 10대 때 저지른 도둑질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쓸데없고 저급한 것이었는지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나 또한 10대 때 그만큼 저질의 일탈행위들을 종종 저지르곤 했다. 그러나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시기라 변명하며 그 부도덕한 행위들을 기억 속 저 구석에 밀어두었다.

 

오늘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자신의 결점을 감추도록 부추기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고 그만큼 자주 쓰게 되는 자기소개서에서는 자신의 결점은 최대한 덮고 장점은 최대한 과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매일 손에 쥐고 사는 SNS에서도 좋은 일, 행복한 순간, 혹은 성취한 것들만을 이야기하고, 일상 속 작은 불행들이나 실패들은 일기장에도 쓰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남에게 드러내려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외적 자아를 가꾸고 다듬는 데에만 지나치게 열중한 결과, 외적 자아와 내적 자아 사이에 불균형이 생겨버린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결점은 감추고 장점만 내세우는 환경 속에서 자신이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그를 극복하고 한 발작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도대체 무엇이 성공이며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할 것을 강조하는 자부심의 시대’, ‘자기과잉의 시대에서 진정한 자신은 결코 사랑할 수 없는 비극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빅미(Big Me)’ 문화에 가려져 지금은 거의 사라진 리틀미(Little Me)', 즉 도덕적 실재론의 대표주자들로 손꼽을 수 있는 여덟 명의 인물들을 통해 성장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젊은 시절 화재 현장에서 무고한 죽음들을 목격한 이후 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대의를 위해 역사적 책무를 다한 프랜시스 퍼킨스를 시작으로, 자신을 절제하며 균형 잡힌 중용의 철학을 완성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순종?섬김?자기포기를 역설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고 고통을 나눈 도러시 데이, 조직과 제도 안에서 자신을 낮춘 조용하고 겸손한 영웅 조지 캐틀렛 마셜, 철저한 자기제어와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흑인 인권운동을 선도한 필립 랜돌프와 베이어드 러스틴, 누구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본 소설가 조지 엘리엇, 자신을 비워낸 신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는 아우구스티누스, 여러 장애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며 도덕적 진실함을 실천한 새뮤얼 존슨까지. 이 인물들이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것에 비해 처음 그 시작은 상당히 고단했다. 육체적 장애와 가난 속에서 자란 새뮤얼 존슨이나 문란하고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낸 베이어드 러스틴, 그리고 사랑의 결핍 속에서 사랑을 갈구하기만 하던 조지 엘리엇의 모습에서는 우리가 아는 그들의 면모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들끓는 욕망을 억누르고 자기를 희생하며 타인을 위한 삶을 살거나 문제아에서 한 국가의 중요한 지도자가 되는 삶이 가능했던 것은 이들이 자신의 결점을 바로 알고 싸워 이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위대한 여덟 명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투쟁했다는 것이다.

 

이 여덟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이기심과 욕망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게 만든다. 바로 이때 독자는 자신의 결함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무질서한 현재와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한 인물들의 일생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모든 성장은 바로 이 순간, 자신의 결함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실수를 깨닫고 한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가 극복해야할 상대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인생을 결정하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확신은 앞으로 나아가려 돛을 펼칠 때 순풍이 된다. 하지만 역풍이 불 때에도 이러한 믿음과 확신만으로 배가 나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의 첫 번째 챕터 인간은 모두 뒤틀린 목재다에서 인용한 토머스 머튼의 주장이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영혼은 운동선수와 같아서 싸울 가치가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 시련을 겪고, 스스로를 확대하고,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내세우고 광고한다. “‘는 이런 것도 해봤어. ‘는 저런 것도 할 수 있어. 그래서 는 특별해.”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수많은 들의 총합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셀 수 없이 많은 들이 좇는 성공은 단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가 다른 존재인 와 과연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휘청거리더라도 자신의 길을 나아가고 싶은 가 있다면, 그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학생. 모퉁이극장 관객문화활동가. 책과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