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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 소설이란 무엇인가_박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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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10-31 14:38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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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무엇인가

-제발트,현기증. 감정들

  

박정웅 

 

 

소설이란 무엇인가. 학원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운수 좋은 날과 같은 작품을 가르칠 때, 내가 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나면 아이들은 대체로 대답이 없다.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고만 있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어나간다. 설명문이 아닌 것, 논설문도 아닌 것, 문학 갈래에 속하는 것……. 그럼 문학 갈래에 들어가는 건 또 뭐가 있지? 나는 얼굴 옆으로 손바닥을 펼쳐 들고서 아이들의 대답을 기다린다. 아이들은 역시 뜸을 들이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대답을 기다릴 것이란 고집을 꺾지 않고서 말똥말똥 아이들을 쳐다본다. 시요, 수필이요, 소설요. 아이들이 대답할 때마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다. 그렇지, 잘했어. 연극의 대본이 되는 희곡도 문학 갈래에 들어간다는 거 알아두고, , 그럼 이 작품은 어떤 갈래에 속한다고? 아이들은 모처럼 우렁찬 목소리를 길게 내뻗어가며 대답한다. -! 그래, 맞아, 이 작품은 소설이야. 그럼 이제 다시, 소설이란 무엇일까?

시가 대상에 대한 정서나 사상을 함축적인 언어로써, 운율을 살려 표현한 것이라면, 그리고 수필이 작가의 경험과 깨달음을 자유롭게 풀어 쓴 글이라면, 소설은 서사성이 두드러지는 글, 인물들 간의 갈등과 사건과 복선이 두드러지는 글, 허구성이 두드러지는 글, 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반영하는 글, 이 모든 게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5단 구조로 나타나는 글……. 나는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소설을 가르친다. 그리고 자주 양심이 찔리는 기분을 느낀다. 뭔가, 세상을 조금 더 삭막하게 만드는 데 나 자신 일조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단언컨대, 아이들의 손에 현기증. 감정들을 쥐여주고서 읽게끔 한다면, 절반은 두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엎드릴 것이고, 남은 절반의 절반은 다섯 페이지쯤을 읽다가 졸 것이고, 남은 절반의 절반의 절반은 두 번째 챕터로 들어가다 말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갸웃거리다가는 읽기를 포기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일단 읽어보려 들까? 어쩌면 일말의 호기심까지 느끼면서 그리할 수도 있겠지. 그 호기심이란 이게 정말 소설이라고, 와 같은 생각이나 도대체 어떠한 이야기가 이어질까, 와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테고 말이다.

효율적인 서열화를 위해 만들어진 비좁은 틀 안에서 국어 교육을 받아온 한국 독자들은 제발트라는 이름의 낯섦 만큼 낯선 형태의 이 소설을 집어들고선 의문 부호를 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발트는 요즘 막 떠오르는 신인이 아니라,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번 거론됐을 만큼 명망 높은 작가이며, 이미 15년 전 세상을 떠난 작가이다. 알 만한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지만, 모를 만한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밖에 없는 이름. 그 이름의 주인은 드문드문 한국의 독자들에게 읽힐 때마다 이렇게 물을 것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현기증. 감정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2013년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화자가 1813년의 스탕달, 1913년의 카프카가 남긴 발자취를 따르며, 새삼 자신의 시간적공간적 위치를 확인해가는 수기로 보이는데, 아무런 힌트 없이 이를 눈치채기란 쉽지 않다. 나 또한 작품 속에 제시된 곁텍스트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아, 작가가 꼼꼼하게 짜놓은 이 작품 고유의 결을 아직은 완전히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제한적 여건에서 내가 느낀 현기증. 감정들의 특별함은 이 작품이 정확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여담의 집합이라는 데 있고, 한 여담이 다음 여담으로 나아갈 때 돋보이는 무목적성에 있다.

일단, 현기증. 감정들에서 엿볼 수 있는 제발트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일반적으로 소설, 하면 기대하게 되는 개성적 인물의 유형이라거나, 사건이라거나, 갈등이라거나 할 만한 요소들이 극히 드물게 나타나고, 그리하여 작품 내내 긴장감이라고는 느끼지 못할 만도 하지만 결국 읽게 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원동력이 되는 요소는 제발트의 문장력으로 보인다. 그의 문장은 구체적인 대상을 묘사할 때든지, 추상적인 마음이나 생각을 진술할 때든지 의미를 정확히 포획해낸다. 그가 문장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의미가 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문장은 리듬을 놓치지 않는다. 긴 문장이 자주 구사되지만 흔들림이 없고, 때론 날카로운 서정성을 담아냄으로써 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의심할 수 없게끔 만든다. 독자는 그의 마음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여행하고, 돌아온다. 시였다가, 수필이었다가, 소설이 된다. 제발트에게서, 갈래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

한편 현기증. 감정들을 주구장창 읽다 보면 마음 한켠에서 이러한 의문들이 솟구치기도 한다. 이 작자는 지금 무엇을 목적으로 이렇게 기나긴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을까, 무엇을 설득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이 의문들의 끝자리에는 항상 놀라우리만치 냉소적인, 무목적성만이 남는다. 어쩌면 제발트는, 그냥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보이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말들은 소설이 된다. 그리고 이쯤 해서 다시 묻게 된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귀향’, 그중에서도 후반부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W에서 머무르다가 기차를 타고 고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부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창밖의 인위적인 풍경을 보며 남서독 지역, 남서독 지역, 남서독 지역을 끊임없이 뇌까렸음을 고백한 문단. 뒤이어 하이델부르크 역에서부터 보게 된 한 여성, 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스를 쏙 빼닮은, 보헤미아의 바다라는 낯선 책을 읽던 그 여성에게 말 한 마디 걸어보지 못했던 것을 죽도록 후회했음을 고백한 문단. 런던으로 돌아와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안토니우스, 게오르기우스를 묘사한 문단. 리버풀에서의 기나긴 산책겨우 5km에 불과했지만 마치 생애에서 가장 긴 거리를 산책한 것 같았던 그 산책과 지하철역 입구의 꽃 행상 앞에서 문득 느꼈던 거대한 피곤함, 그리고 여러가지로 기묘하게 느껴지는 지하철역 내부를 묘사한 문단. 마지막으로 열차 안의 문단, 그러니까 생명력을 잃은 듯 보이는 열차 안의 풍경, 화려함과 환멸감이 공존하는 창밖 도시의 저물녘, 그날 오후 구입한 책의 지루함, 어느새 밀려온 졸음, , 높다란 산맥 위에서 건너편 산맥을 보는 동안 머릿속을 스치던 저 산은 결코 넘어서지 못하리라는 생각, 그리고 현기증, 그리고 메아리, 런던의 대화재까지. 이들 문단의 이어짐은 마치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이야기순간들의 패치워킹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읽게 된다. 내 모자란 능력으로는 그 원인을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이것이 현기증이고, 감정들이고, 제발트가 아닐지. 삶이고, 반항이고, 글쓰기이고, 그리하여 소설이 아닐지…… 이제 나는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재차 묻게 된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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