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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눈 감은 에코르셰2_정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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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26 10:19 조회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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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깍꼴깍 잔을 비우면서 두서없이 쏟아내는 정의 얘기를 요하자면, 그의 꿈속에 성양호 작가가 비쩍 마른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몇 주 전, 성 작가가 처음으로 꿈에 나왔을 때, 정은 반가운 마음이었다고 했다.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터라 사료가 많지 않고, 생전 그에 관한 한 유족과 지인 인터뷰에 오롯이 기대야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러 날 동안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자는 산 자의 생활을 갈아먹기 충분했다. ‘, 왜 눈을 시퍼렇게 뜨고 계시냔 말예요애원하듯 중얼거리다 깨어나길 며칠째, 정은 밤이 오는 게 두려울 지경이 되었다. 한편, 공장을 운영하는 고인의 친형으로부터 기증서약을 받기로 한 날이었다. 형님께서는 공장 한편의 창고에 동생의 작품 삼십여 점을 보관하고 계셨다. 비록 장판을 깔고 환풍기까지 설치했다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창고를 개방하자, 호스의 끝을 좁게 쥔 것처럼 쏜살같은 볕이 창고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부유하는 먼지를 헤치며 한 발씩 창고 안으로 몸을 옮기는 순간, 정은 예감할 수 있었다. ‘애초에 수장고 차원을 기대한 적은 없으나발밑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나 고개를 떨어뜨렸다. 깨진 유리 조각이었다. 표구야 다시 하면 된다 쳐도, 칠이 떨어져나간 유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프레임의 가장자리부터 슬기 시작한 곰팡이는 어쩌고그날 밤, 어김없이 성 작가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이 고개 들어 박의 탁한 눈동자를 보았다. 노트엔 피부가 벗겨져 근육이 그대로 노출된 자가 있었다. “, 이게 나야?” 박은 대꾸 없이 술을 넘겼다.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근섬유다발의 묘사가 그로테스크해 보이는 드로잉은 영락없이 해부학 실습용 자료 같았다. “이게 나냐고.” 박은 빙긋이 웃으며 노트를 접어서 가방에 넣었다. “? 나 안 줘?”, “내 건데 왜 널 주냐?”, “아니, 시발 나 그렸는데 왜 자기가 가져가?”

정은 만 원 주고, <눈 감은 에코르셰>를 제 가방에 넣었다. 대리기사는 이발소 나와서 호출할 것이다. 귀를 한참 덮고 있는 머리칼이 미용커튼 위로 우수수 잘려나간다. ‘만 원, 만 원정은 자꾸 비어가는 지갑 사정이 떠올랐다. 그러면 어떠랴. 가위질이 지날 때마다 전해오는 모근의 진동에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진다. ‘눈 좀 감으라고’, ‘?’, ‘뭐 어때? 죽은 사람인데.’, ‘그래서 더 힘들죠. 산 사람이면 미주알고주알 말이나 하지, 죽은 사람은 눈만 부릅뜨지 통 말을 않아요.’ …… 손님, , 눈만 감아 달랬지, 어디 그렇게 푹 주무시랬나.” 이발사가 가볍게 어깨를 흔들어 정을 깨웠다. 그는 또 영락없이 까무룩 잠든 모양이다. 눈꺼풀을 밀어올린 그가 웃음을 머금은 거울 속의 이발사에게 말했다. “덕분에 푹 잤습니다.”

이발소를 나와 주차되어 있는 차로 걸어가는 동안, 바람이 불어와 귀를 간질였다. “떻게 잘라드릴까요?” 묻는 말에, 정은 알아서 잘라주세요.”라고 했다. 아니다. “단정하게라고 했나, “인색하지 않게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대체 뭐라고 요구를 했기에 이발사는 눈이라도 감아주던가하며 툴툴거렸던 걸까. 이발사는 취향이 없는 손님일수록 더 어려우면 어렵지, 결코 간단하지 않다고 했다. 완성된 작품 앞에선 꼭 없던 취향도 샘솟더라는 것이 그의 전언이었다. 정은 눈 감는 것이야말로 제가 잘하는 일이라며 중얼거렸다. ‘더구나 아직 밤이 오려면 멀었으니그땐 몰랐다. 이런 초저녁에도 성 작가가 꿈에 나올 줄은.

대리기사님의 매끄러운 운전 솜씨에 차는 크루즈선박처럼 미끄러져 나아갔다. 그럼에도 정의 의식은 수마의 영외지에서 또렷하게 전방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눈 감은 성작과 그의 에코르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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