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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동 성공_김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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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738회 작성일 17-06-1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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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7.06.16

순간이동 성공

김마음

 

 

사상의 한 공단에서 나는 발견되었다. 그곳은 사상 주민도 아니고 공장 관계자도 아닌 내가 한밤중에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스카우트의 규율을 잘 지키겠습니닷! 거기까지는 기억이 난다. 신평의 한 횟집이었다. 때아닌 대선이 있은 지 며칠 후, 또 때를 거른 적이 없는 학회의 세미나가 열리기 며칠 전이었던 그 날, 도하와 나는 세미나 저녁식사 자리의 사전 답사를 위해 그 횟집을 방문했다. 학사행정업무를 보는 사이사이에 6명 교수님과 30여명 학회원들의 일정을 조율하고, 자료집을 제작하고, 세미나 장소를 섭외하고, 현수막 및 다과 등 온갖 잡것들을 준비하고 하는 동안 우리의 스트레스도 한계치에 다다랐다. 막바지에 숨 돌리듯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저녁식사 식당 예약이 의외의 복병일 줄은 몰랐다. 반경을 점점 넓혀 가며 학교 주변을 돌면서 수용 인원과 메뉴와 가격이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식당을 발견할 때마다 학회 간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오케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면서 그럼 도대체 어디를 고르면 오케이가 떨어질 것인지에 대해 세미나 프로포잘의 한 순서를 차지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연구 방법론을 수립하고 있는 때에 간사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평에 물따라가는길이라는 횟집이 괜찮대. 답사 가보구 별 문제 없으면 거기로 예약해요. 횟집까지 가는 길에는 별 말이 없던 도하와 나는 모듬회 소짜를 시키고 소주 몇 잔을 꺾고 나자 어차피 서로밖에 들어줄 수 없는 불만을 실컷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깐깐하게 굴더니 결국 똥개 훈련 시키려고 그랬던 거였다거나 혹시 이미 횟집과 유착을 해놓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다른 식당을 알아보라고 한 게 아니냐는 등의 직설적인 음해를 하면 도하 녀석은 사무실에만 틀어박혀 있는 우리가 걱정이 돼 친히 운동을 시켜주신 것이라거나 자신은 덕분에 해양수산학의 관점에서 본 답정너 현상을 학위논문 논제로 정했다는 식의 비아냥으로 화답했고 뒷담화에 불이 붙은 우리는 어차피 경비 처리할 거 똥개 훈련 본전이나 뽑아보자는 심정으로 백세주니 복분자니 매난국죽이니 문방사우니 이 술 저 술을 마구 시켰다. 그 이후에 문득 사상의 한 공단에서 나는 발견된 것이다.

 

발견자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물론 어떤 남자 한 명이 도움을 주기는 했다. 삼촌아 고마 일나라, 이기서 자면 안 된다. 공장 옆 인도에 널브러져 앉은 채로 화단의 큰 돌에 기대어 자고 있던 나를 경비원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깨웠다. 나는 자다뇨 잠시 쉬고 있었는데 하는 태도로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 그러니 내가 어디로 걷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 그 와중에 휴대전화가 온데간데없다는 사실, 결국 지금이 몇 시인지조차 모른다는 사실들을 천천히, 차례차례 깨달아 가다가 문득 생각했다. 삼촌? 사암초온? 나는 스스로가 이제 삼촌임을, 내 조카가 자신과 먼만큼의 촌수로 나를 호칭하거나 지칭하는 상대적 삼촌이 아니라, 나와 아무런 혈연이 없는 연장자가 나의 생물학적 나이를 가늠하여 친히 인정해준 절대적 삼촌임을 발견한 것이다. 이 서글픈 현실이 횟집에서의 기억을 조금 더 떠오르게 했다. 뒷담화 한마당은 어느새 신세타령 대잔치가 되어 있었다. 내가 취직하는 게 무서워서 대학원 들어왔다가 결국 일은 취직한 것과 다름없는 정도로 하면서 돈은 한 달에 60만원 받는 생활로 꾸역꾸역 달력을 넘기다보니 어느새 서른 살을 찍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꼬부라진 혀로 늘어놓자 도하는 역시나 꼬부라진 혀로 너 그 얘기 세 번째 한다고 대답했다. 그랬냐 하고는 다른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도 예컨대 너 아람단 했었다고? 나는 보이스카우트 했었는데 하다가도 맙소사 나도 한 때 보이였는데 지금은 서른이라니! 나이 타령으로 귀결됐다가는 또 밑도 끝도 없이 스카우트 선서! 하느님과 나라를 위하여 나의 의무를 다하겠습니닷!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가 다른 손님들의 눈총을 산 뒤에야 얌전해져 한동안 침묵을 지킨 후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 어조로 도하야. 스카우트는 단연 스타크래프트 최악의 유닛 아니겠냐?*) 같은 헛소리를 씨부렁댔던 기억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 스카우트가 스타게이트를 통해 순간이동에 성공했을 때의 대사가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그 대사가 ????? ?????정도로 들렸다. 꼭 그 때문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모든 교과목 중에서 영어를 유독 열심히 공부했고 그 공부의 목표 중 하나가 스타크래프트 유닛들의 대사를 자유롭게 알아듣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도권의 천편일률적 영어 교육은 듣는 귀를 틔워주는 데는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한 데다 입시 만능주의의 교육 현실에서 게임 속 대사를 듣고 싶다는 목표가 얼마나 얼빠진 목표인지도 차츰 알아갔기 때문에 나는 이내 저 목표를 까마득히 잊게 되었다. 그리고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몇 주 전이었던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무료로 배포된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플레이를 해봤다. 그리고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스카우트의 순간이동 대사가 들리고 만 것이다. 마치 내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던 시절의 스카우트가 십 수 년의 세월을 건너 지금의 나에게로 순간이동해온 느낌이었다. “Teleport successful.” 그리고 스카우트가 순간이동 성공을 알리는 대사는 다름 아닌 순간이동 성공.”이었다. 이 어이없는 안티클라이맥스의 허탈함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스카우트를 뽑았다는 사실 자체 때문인지 그 게임을 패배하고 말았던 기억이다.

 

심장철강, 대유스틸, 만국공업, 은설벤딩, 좁은 길을 하릴없이 걸으며 나는 내가 왜 이런 곳에서 발견된 건지 유추해 보았다. 결론은 이랬다. 아마 우리는 회 한 접시로 비웠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양의 술병을 비우고 세미나 저녁식사 예약을 한 후 가게를 나왔을 것이다. 신평에 사는 도하는 남쪽으로 향했을 테고, 하단에 사는 나는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을 것이다. 처음 가본 곳이라 지리가 낯설었지만 술에 취해 흐려진 판단력으로 나는 북쪽으로 마냥 걷다보면 내 자취방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취방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북쪽으로 정말이지 마냥 걷기만 하다가 결국 이곳 공단에까지 이르게 됐을 것이다. 정신을 차린 후 족히 한 시간을 헤맨 끝에 나는 큰 길로 나올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곳이 사상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개통 예정인 부산 도시철도 5호선 전 구간을 걸어서 이동한 셈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의 기억과 감각과 시간이 내 안에서 완벽하게 소거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사실 내가 그 거리를 걸어서 이동했는지, 히치하이킹을 했는지, 순간이동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차라리 내가 한 이동은 순간이동이라고 할 법했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이동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났으니까. 그렇다. 나는 순간이동에 성공한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취방에 돌아온 나는 이도 닦지 않고 잠이 들었다.

 

분실한 휴대전화를 비롯하여 여러 걱정거리가 뒤늦게 몰려온 것은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뜬 시간에 잠을 깼을 때였다. 몇 시인지 확인하기 위해 티브이를 켰다. 새 대통령의 행보들을 뉴스는 연이어 보도했다. 생각해보면 지난겨울 나는 학사업무나 학업 핑계를 대며 한 번도 광화문이나 서면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새 세상이 열렸다. 남들이 들어준 촛불로 부지불식간에, 나는 새 세상으로 순간이동한 셈이다. 불현듯,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간밤의 경험으로 나는 강제로 순간이동 당하는 데에는 유실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하단에서 사상까지로 휴대전화를 잃었다. 새 세상을 거저먹은 정도로는 대체 무엇을 잃었을지,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하단에서 사상으로 갈 때도, 구 정권에서 신 정권으로 갈 때도, 하물며 보이에서 삼촌으로 갈 때도 순간이동은 그리 좋은 이동 수단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백세주니 복분자니 매난국죽이니 문방사우가 뒤섞인 지옥 같은 입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이를 닦기 시작했다.

 

 

*스카우트(정찰기)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외계 종족 프로토스 소속의 비행 유닛으로, 정찰기 치고는 비싼 생산 비용이 드는 데 반해 성능은 정찰로도 못 쓸 똥쓰레기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프로토스 종족은 설정 상 고향 행성에서 5분대기하고 있는 전사들을 전장으로 순간이동 시켜 병력으로 이용한다고 하며, 각 전사들은 순간이동이 완료됐음을 보고하는 고유의 대사들이 있다.

***) 개발사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판 출시를 예고하며 기존의 스타크래프트를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했다. 자세한 내용은 http://kr.blizzard.com/ko-kr/games/sc/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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