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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사라지는 집들을 보며_구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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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06 22:38 조회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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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사라지는 집들을 보며

 

구설희

 

  누구나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했다. 무릇 집이란 ‘누군가 그곳에 있었다’라고 미래의 누군가에게 말해주는 거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4.5평 원룸에서 이사 할 요량으로 집을 둘러봤을 때였다. 세입자가 짐을 뺀 3층 옥탑방, 창에 발린 하얀 창호지에 빗물이 스며 쥐오줌 같았고 청승맞았다. 전에 살던 주인은 이곳의 어떤 부분을 사랑했을까. 스티로폼에 삐죽이 솟은 풀이었을까 검은 이끼가 낀 넓은 시멘트 마당이었을까.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정겨웠는지 단정했는지,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아 그들을 떠올릴 수 없었지만 그들 삶의 일부가 이곳에 존재했던 건 맞을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 거다. 당신이 여기에 살긴 했을까. 내가 본 건 ‘흔적없음’의 증거였을까.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는 당신의 애씀을 본 것일까. 흔적이 없다는 건 아무 것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나는 왜 그 흔적을 찾아 이렇게 곰곰이 고민할까. 우리는 흔적이 없어진 시대, 당신을 상상하지 못하는 시대에 와있다. 그 상상할 수 없는 장소엔 다른 사람들이 삶을 채운다. 

  부산 명륜역 일대엔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라 주택은 다 부수어져 시멘트 자갈 대지만 남았다. “제2의 용산참사를 막자”는 플랜카드를 내건 주택은 홀로 외롭게 넓은 대지 위에 서 있어 옛적에 그 주변이 다 주택이었겠구나, 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집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흔적도 사라진, 마치 시멘트 사막 같은 그곳을 지하철로 오가며 지켜보기가 꽤 싱숭생숭했다.

  뒤돌아보면 어느새 개발되고 사라지는 장소와 이사철마다 자리를 옮겨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런 사회에서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장소를 계속 잃는 것일까. 잃어버린 건 그 장소 뿐 아니라, 개발과 세상살이의 논리로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옥탑방에 있던 가족들, 4.5평에 머물던 나. 거기서 지내던 저이들이 사라지고 황급히 다른 이들의 시간들로 채워지고 메워진다. 마치 나도 그런 논리로 황급히 치워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재개발 현장을 보고 싱숭생숭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르게 말해보고 싶다. 태국에서 보았던 거처를 정해두지 않고 옮겨 다니며 사는 디지털 유목민, 디지털 노마드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런 삶의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당대에 잃어버린 장소는 다른 장소에서 계속 의미를 만들어나가며 채워질 수 있을까. 소멸되는 걸 괘념치 않고 의미를 저마다 만들어 나가기를. 때마다 획득되는 장소의 기억을 안고 다음 장소의 삶을 이어 나가고 있기를 바란다. 

 

  ‘나’라는 존재가 계속 획득되고 변화하는 정체성이듯 집과 장소도 그렇게 의미가 획득되고, 의미를 생성해 나갔으면 한다. 내 집을 사는 데에 13년이나 걸린다는 말에 아연해지기도 하지만 내 삶을 돌볼 집을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꼭 집을 갖지 않고서도 의미 있는 장소를 매번 만들어나가고 싶다. 4.5평이었던 곳에 온기가 돌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아이들을 초대해 계란말이와 된장국을 끓여주었던 순간과 “맛있어요”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 그게 내가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이다. 사람들의 체온이 촘촘히 채워진 곳으로 만들기. 꾸준히 바지런히 의미를 만들고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곳. 사람을 잃지 않고, 부유하는 마음을 그곳에 간직하고, 이어나가고 싶다. 4.5평의 원룸에서, 옥탑방에서 그렇게 옮겨다니는 삶도 ‘누구나’ 장소의 의미를 획득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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