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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되는 사람들_김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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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548회 작성일 19-08-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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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되는 사람들

 

김석화

 

 

 매일의 책방을 나는 글로 남기고 싶었다. SNS를 통한 단편적인 소식이 아닌 책방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아니, 작은 책방에 와서 책을 사는 흔치 않은 사람을 쓰고 싶었던 게 정확하다. 그걸 단번에 알아차렸던 건 아니다. 

 

 작은 책방이 일부의 사람들에게 유행처럼 인식되고 때론 포토 스팟이 되고, 수많은 해시태그가 책방 앞에 따라붙는다. 그리고 ‘책방 일기’가 책방의 기본 차림처럼 나오는 걸 안다. 공적인 공간에 대한 사적인 글. 세련된 유머와 시대에 바짝 붙어선 줄임말 표현에 공감을 이끄는 실수담까지 곁들여진, 소소한 글. 책방 일기라는 형식에 운영의 고충과 책방에 와서 책을 사라는 은근한, 때로는 과격한 언질과 책방지기의 심적 요동까지 섬세히 담아낸 글. 그래서 적당한 무게를 지고, 적당한 웃음도 잃지 않는 글. 그런 글들을 읽어 보았고 그런 형식이 맨손 운동처럼 책방이라는 몸을 움직이는 하나의 기본 운동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한 의지가 그대로 배어나온 선한 글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따라 써 보고도 싶었으나 나는 매번 실패했다. 바늘로 찔러도 유머라곤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몸이라 글 앞에선 더 비장해지고 진지해졌던 탓이다. 생각나는 대로 쓰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쓰지 않으려 애쓴 탓이다. 게다가 요즘의 ‘말’들을 거의 모르고, 당신 앞에서 작아지는 나처럼 글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져 종내는 몸이 없어지고 손만 둥둥 떠다녔기 때문이다. 쓰다 만 ‘책방 이야기’ 앞에서 나는 맨손 운동을 건너뛴 채 힘든 운동만 하고 있었던 셈. 숨소리만 거칠어졌다. 그렇게 책방 이야기라는 재미난 글감 앞에서 머뭇거리기만 했고, 그런 형식의 글은 내 몸에 맞지 않는 글이라 여기며 오늘이 되었다. 

 

  책방을 담아내는 글 앞에서, 난 무엇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아무런 이야기도 남기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지만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책방지기들이 하루 일과처럼 쓰는 글이 아닌 내가 쓸 수 있고, 쓰고 싶은 글을 고민했고 그래서 몇 개를 써보았다. 책방을 배경으로 양각으로 다가오는 인물을 그려보는 마음으로. 어쩌면 짧은 소설일수도 있는 형태로. 정확하게는 배경은 책방, 인물은 손님으로 구성된 그 날의 사건을 소설로 쓰고 싶었던 거다. 작은 책방에 오는 손님, 거기다 책을 사는 일까지 벌어지면 그건 정말 사건이니까. 진심으로 쓰되 소설이라는 형식을 고집한 건 욕심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나는 3인칭 ‘그녀’로 변했고 관찰자였다. 한 편의 글은 ‘그녀’와 그 날의 손님 이야기. 쓰는 ‘나’와 그 짧은 글과의 거리가 필요했기에 나는 그녀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한 지인은 그 글들을 보고 다소 비겁하다 했다. 비겁함이 글에도 달라붙는구나 느꼈지만 그 글들에서 나는 1인칭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1인칭과 3인칭 사이에서 분신하는 동안 몇 명의 2인칭들이 글로 남았다. 

 

 그것은 초심의 태도였고 난생 처음 ‘책방지기‘라는 역할을 맡은 한 사람의 반짝이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책방에 발 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들을 그냥 손님으로 남겨두기에 아깝다고 여겨졌기에. 그렇게 아까운 사람들이 있었다.

 글로 남지 않은 사람들.

 

 3인칭의 그녀 앞에 나타나 아직 글이 되지 못한 글 밖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늘어간다. 그들에 대한 기억이 차곡차곡 포개져 두툼한 이불이 되어 나를 덮고 있다. 이불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지거나 그 크기가 늘어나 얼굴까지 덮을 때, 그래서 숨이 찰 때 그들은 하나의 글이 될 것이다. 되지 않을까, 되어야 할 텐데. 마음에는 이미 또렷이 새겨지고 있지만, 글 속으로 그들을 불러들이고 싶다. 사람들이 사 간 저마다 다른 책 제목을 살피며, 오늘의 2인칭들을 슬몃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