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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술> 3.흔한 대화의 기술_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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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1,655회 작성일 19-07-0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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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술>

3. 흔한 대화의 기술

 

현 수

 

 

(미리 이야기하자면, 이번 이야기는 소설 창작쪽에 좀 더 치우쳐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단순히 그런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J.J. 에이브람스 감독의 영화 슈퍼 에이트에서 조와 친했던 찰리는 갑자기 조에게 쌀쌀맞게 대한다. 조는 아버지가 카메라를 뺏아간 것이나 열차 모형을 폭발시키지 못하게 한 것 때문에 찰리가 화를 낸다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말을 걸며 달래 보지만 찰리는 좀처럼 이유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한참을 묻고서야 찰리는 눈치도 참 없다고 푸념하더니, 영화 때문이 아니라 앨리스 때문이라는 걸 털어놓는다. 그것도 처음에는 조가 앨리스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화난 것처럼 말하더니, 나중에야 엘리가 조를 좋아하는 데에 대한 화풀이라는 걸 밝힌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렇다. 찰리는 앨리스를 좋아한다. 그러나 앨리스는 조를 좋아한다. 찰리는 자신이 뚱뚱하고 못나다는 위축감을 조에게 발산한다. 조가 앨리스를 좋아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고, 조의 아버지가 카메라를 가져간 것도 싫고, 모형 기차를 폭발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도 싫다.

 

진심을 듣는 과정은 이렇게도 험준하다. 사람들은 속엣말을 절대로 빠르고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야기 속의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앞서 든 예는 그나마도 이것이 아이들이기 때문에 저렇게 캐묻고 늘어져서 단 몇 분만에 진실을 듣는 데에 설득력이 주어진다. 자기방어를 사회적으로 익힌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결코 저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혹은 소설이든, 영화든 뭐든. 상당수의 갈등이 말에서 비롯된다. 각 인물은 무언가를 더 알고 있으나, 그렇게 아는 바를 밖으로 드러내면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타인에게 해가 되거나 등등의 이유로 모든 이야기를 다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면 우리는 속으로 외칠 것이다. ‘그냥 말을 하지 뭘 저렇게 숨기냐 답답하게!’ 하지만, 우리는 어디 그러지 않는가.

 

정보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으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본능적이든 아니든. “그냥 처음부터 다 이야기하지 않고 왜 숨겼느냐는 상대방에게 아쉬운 게 있는 입장으로서나 하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자기가 아는 것은 최대한 적게 들어내고 상대가 아는 것은 최대한 많이 들어야만 유리해지는 법이다. 실제 사람들은 늘 그렇게 대화를 나눈다. 아니, 실제 사람들은 오히려 너무나도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 데다가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한 가지 사건에만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것조차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흔한 대화의 기술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람들은 이것을 인식조차 하지 않고 행한다.

 

그것이 대화의 특성이다. 대화란 한 개인의 편협함과, 그 편협함을 숨기고자 하거나 혹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내어 주는 거울이자, 그 편협함을 기준으로 상대의 말이나 의도를 곡해하는 암호 장치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100%에 가깝게 온전히 전달하고자 하는 마법의 매개체가 아니라.

 

이야기적으로 가져가 보자. 이야기는 갈등을 먹고 흘러가는 장르이다. 갈등과 해소, 긴장과 이완은 이야기의 기본이다. 밑도 끝도 없이 솔직한 인물들은 이야기를 힘있게 끌고 가 주지 못한다.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긴 하다. 인물들이 모두 힘을 합해도 세계와 맞서 싸우기가 쉽지 않은 그런 이야기라면, 모든 인물들이 서로 정직할 수 있다. 아마 꽤나 심심해지긴 하겠지만.

 

이야기를 쓸 때 인물이 존재한다면 그 인물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물과 대화가 내러티브를 전개하기 위한 도구가 되면 이야기는 실패의 수순을 밟게 된다. “이쯤에서 인물이 진실을 말해야 뒷이야기가 나가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 정도까지 괴롭혀야 진실을 토해 내겠지라고 접근해야 옳다. 인물이 진심을 말하는 건 말하지 않음으로써 이제는 잃을 것이 더 많을 때여야만 한다. 그리고 보통 그 지점은 인물이 실제로도 변화하는 지점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진실을 받아들이고, 털어놓고 싶지 않았던 흠을 털어놓음으로써 인간은 다음으로 나갈 준비를 하게 된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보수적인 인물이 그 자체로 살아 있고 갈등을 유지시키며 이야기에 흡입력을 부여한다.

 

이것보다 한 단계 위라면, 그 인물이 진실 또는 진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이다. 보통 이런 인물들은 그 진실 또는 진심을 찾는 길고 고달픈 여행을 하게 된다. 그 여행길에 인물은 앞문단에서 이야기한 고통의 지점에 여러 번 접하게 될 것이다. 그 길 끝에 있는 것을 보통은 주제라고 부른다. 다음 화에서는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도록 하겠다.

 

 

글을 썼던 사람. 앞으로 글쓰기를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