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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 책의 물질성_박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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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6-13 11:24 조회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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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물질성

강진이,너에게 행복을 줄게를 읽고

    

박정웅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책의 종말론은 지구 종말론만큼이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야깃거리가 된 듯하다. 지난 20세기 영상 매체의 발달이 인쇄 매체를 향한 위협이나 경고에 머물렀다면, 오늘날 디지털 매체의 발달은 향후 인쇄 매체를 완전히 대체할 과정으로 기대되고 있는 까닭이다. 다만 나는 책의 수명을 걱정하는 일이, 책의 종말보다는 책의 진보로 이어지리라 생각하곤 한다. 이전까지 인쇄 매체가 지나치게 광범위한 매체의 영역을 독점해왔을 뿐이라는 생각,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매체의 영역이 세밀하게 갈라지고, 비로소 인쇄 매체가 제 역할을 찾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는 강진이의너에게 행복을 줄게에서도 확인된다.

너에게 행복을 줄게는 그림일기 모음집이다. 꿈 많던 미대생에서 두 딸의 엄마가 된 저자가 하루하루 기억해두고 싶은 행복을 그리고 써서 모은 것이라고 하면 충분할까. 숙명여대와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강진이 씨는 평범한 주부로서 삶을 살아가던 중 돌연 작가라는 이름을 달게 됐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공유한 그림일기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었고, 마침내 책으로 출간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다.

 

책은 한눈으로 훑어봐도 예쁘다는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표지만 봤을 때는 크게 특별한 점을 찾기 어렵지만, 집어 들기 시작하면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 장씩 펼치면서 느낌은 확신이 된다. 이 책이라면 소장할 가치가 있겠다는 믿음. 책을 읽고 나서, 믿음은 선물하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어 있다.

책의 안쪽에는 작가의 그림과 글이 병렬 구성되어 있다. 애초에 일기라는 형식의 글쓰기가 그렇듯이, 작가의 글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의 무난한 기록에 가깝다. 다만 그녀의 그림이 곁들여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글만 봐서는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결이 그림을 통해 드러나고, 그림만 봐서도 드러나지 않을 작가의 눈길이 글을 통해 드러난다. 그림과 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그로 하여금 독자로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너에게 행복을 줄게가 주는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목련 꽃잎(책의 76~78)이나오이소박이(책의 94~95)가 그러했다. 목련 꽃잎오이소박이에 글이 곁들여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독자로서는 초봄의 목련나무를 지나치듯이, 어느 식당에선가 밑반찬으로 나온 오이소박이를 건드리지 않듯이 가볍게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자는 작가의 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봄이 되어 이렇게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 ‘, 이 나무가 목련이었구나.’>와 같은 인식 앞에서.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들으며 오이소박이를 담그는 작가와 흘러간 시간의 우둔함을 곱씹으면서. 독자는 머릿속으로나마 그림 같았던 시절을 그려보게 된다. 나의 삶에도 행복이라고 할 만한 순간이 있었겠구나. 없지 않았구나.

 

너에게 행복을 줄게는 주변의 누구에게 선물하든지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책이 아닐까 한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시간이 날 때면 읽어낼 수 있는 분량의 글, 그날그날 사연 속 장면마다 구체적으로 재현된 소품들, 그리고 책 전체를 휘감아도는 삶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인식까지. 뿐만 아니라 책을 손으로 집어 들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두툼함은 타지에 자식 보내는 부모 마음 같기도 하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호시절을 향한 내 마음 같기도 하다. 온전히 작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책은 작가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책의 물질성이라 함은 단순히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맡을 수 있음에 머무르는 것이기보다는 작가가 독자를 위해 준비한 고마운 마음의 표현에 가깝지 않을까. 다시 책상 위에 놓인 너에게 행복을 줄게를 본다. 이 얼마나 포근한 마음인가.

- 글을 씁니다.

장르와 장르 사이에서 끓는점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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