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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에 대해 더 말하기-<월경의 정치학(박이은실)>을 읽고-구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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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5-27 10:25 조회1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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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에 대해 더 말하기-<월경의 정치학(박이은실)>을 읽고

 

 

  내 월경의 역사는 중2때 시작되었다. ‘왜 이렇게 늦게 하지? 또래 친구들은 다 하는데’라고 걱정을 했었지만, 결국 했고 월경을 시작했을 때도 별다른 의식이나 축하가 없었기에 남들 다하는 것을 했을 뿐이라 생각했다. 그 후로 20년을 넘게 월경과 함께했다. 그동안 월경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터 ‘난 왜 생리에 대해 말하는 게 부끄러울까?’ ‘생리대는 왜 검은 봉다리에 넣어주는가,’같은 질문을 하게 됐다. 한 달에 한번 일어나는 생물학적인 증상이 왜 부끄러우며 감추어야하는 것으로 여겨질까. 

  월경에 자부심을 가지거나 뿌듯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야외 활동 땐 번거로웠고 수영을 한 달 끊을 땐 일주일은 이용을 못하게 되니까, 불이익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서른 이후에 ‘자궁선종’이라는 진단을 받고는 더 그랬다. 자궁벽이 두꺼워져 월경혈이 예전보다 더 많이 나오는 증상이 생긴 내게, 월경은 몸을 위태롭게 하는 무엇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월경의 정치학>으로 진행한 독서회에서 월경 기간에 “충만함”을 느낀다는 동료의 말을 들었을 때 낯설었고 궁금했다. ‘충만하다니!’

  처음부터 충만한 건 아니었다고 동료는 덧붙여 말했다. 경험이 쌓이고 어떤 경지를 넘어 옷에 생리혈이 묻어도 괘념치 않게 되었다 했다. ‘충만함’을 느끼기 까지 시간과 경험-월경을 할 때 여성의 몸은 바뀐다. 충만함이란 몸의 변화가 긍정적으로(피부가 좋아진다거나, 변비가 없어진다거나, 노폐물이 밖으로 나가는 것 등) 체험되는 경험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지 않을까. 더불어 기존의 부정적인 시각을 대체할 수 있는 철학이 쌓여서이지 않을까. 꾸준히 공부를 해온 그였기에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월경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개선할 수 있는 담론과 철학이다.    

 

  저자는 생리 보다 월경이라 불러야 된다고 말한다. 생리란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만을 가리킨다. 흔히 말하는 ‘생리현상’의 그 생리를 가리키므로 ‘매달 치르게 되는 행사’의 의미를 가지는 월경을 써야 한다고. 의식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그것이 통용된다면 조금 더 긍정적으로 월경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몸은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몸이란 무엇보다도 ‘젠더’ 규범이 구성되고 체화되고 또 발현되는 정치적 현장”이라고 말한다. 특히나 여성의 몸은 가부장제 사회를 존속시키기 위한 출산, 성애적 시각으로만 존재해 왔다고 말한다. 월경은 역사적으로 터부시되어왔고 “모든 문화권에서 월경혈이 오염을 일으킨다는 관념은 공통적으로 존재”해 왔다. 이원론적 세계에서는 이성애자/비이성애자 남성/여성 등의 구분이 뚜렷하다. 그것이 남성=이성=문화, 여성=몸=자연이라는 논리와 함께 남성이 더 우월하며 여성은 자연처럼 정복해야하는 대상에 불과하다는 이분법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더 나가서 여성의 몸은 월경이 통제될 수 없기에 더 취약하여 곧 열등한 존재를 가리키며 또한 통제될 수 없는 것을 상징하기에 위협적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 ‘월경’에 대한 터부는 너무 오래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다른 여성들과 월경에 대해 체험을 나눌 기회가 많이 없다. 내가 생리를 부끄럽게 여기는 이유도 “월경혈은 질에서 흘러나오”며 “질은 일반적으로 친밀함, 성적 행위에 관계되는 여성의 은밀한 신체 부위라고 간주(198쪽)”되기 때문이었다. 월경에 대한 의식은 중2때 이후로 변한 게 없다. 예를 들어 생리대 광고가 “순수, 청순, 깨끗한, 하얀(173)”의 이미지를 앞세운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광고는 월경을 오염원이라 간주해 ‘깨끗해져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두의 무의식을 드러내며 또한 그것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다. 

  내 의식의 작은 변화를 말하자면 생리대를 일회용에서 천 생리대로 바꿈으로써 월경혈을 “버려버리는(182쪽)” 쓰레기가 아니라 ‘물들어도 다시 지워지는-재생의 의미’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 생리대를 빨 때마다, 이 빨간피가 나가고 다시 몸에 피가 생긴다는, 재생이 된다는 이미지를 새로 가지게 되었다. 물든 천을 빨아서 새 하얗게 되는 것도 곧 재생을 의미했다. 조금 개운해지는 기분까지 얻게 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월경이 가지는 각각의 경험을 “각자의 상황대로, 각자의 존재대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를 직접 듣자”라고. 그리고 “그대로 존재하게 하자”라고. 여성의 몸을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가부장제가 체제 유지를 위해 지켜온 시각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자고. 증상에 따라 쉬기도 하면서 고유의 경험을 살리자고 말한다. 

  나는 아직도 경험을 쓰고 있는 중이다. 내 월경의 경험은 쌓이고 있다. 아직 불편함이 대부분이라고 느끼는 월경도 언젠가는 충만함으로 바뀔 수 있을까. 아직 알 수 없는 세계일 것이다. 아직도 월경에 대한 인식은 생리대 광고가 말해주는 것처럼 깨끗해져야 하는 어떤 것으로 머물러있을 뿐이니까. 좀 더 힘주어 말할 수도 있겠다. 몸은 타인의 시각에서 더 자유로워져하고 월경에 대해 우리 각자는 더 말해야 한다고.     

 

 

 

구설희: 글과 노동 사이를 오가며 일상수행자로 살고자한다. 또따또가 4기 입주작가로 지내며 부산 중앙동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다.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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