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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빨간 것과 흰 것_정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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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5-23 14:42 조회1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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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것과 흰 것

 

 

정재운

 

 

 

 

  그래서, 행복해? 하고 따져 물을 사람은 이제 없다. 그렇게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죽어버렸다.

  ‘가버려서 행복해?’

  승강기는 대낮의 밝음이 빗겨들지 않는 지하로 느릿하게 한 층, 한 층 내려갔다. 조문하고 다시 구두를 꿰신으려는데, 누가 툭 어깨를 친다. 친근함을 드러내는 그 신호에 몸이 휘청거린다. 홱 돌아보니 선배와 몇 해 같이 살았던, 그러곤 이혼하고도 줄곧 같이 작품 활동을 이어오던 홍 선배다. 선배도 햇수로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이다. 항암 이후론 끊었다고 들었는데, 그녀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하긴, 그런 소식들도 한참 오래 전에 갱신이 끊긴 옛날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홍 선배가 더 오래 살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이 같은 사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고선배와 나 사이엔 어떤 언어도 옛날이야기를 벗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만한 사이면 툭, 하고 한 대 칠 게 아니라 톡, 하고 건드리거나 조용히 이름을 부르는 선이어야 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바쁘냐, 밥은, 잠깐만 앉았다 가, 형이 서운해 하겠다, 정이 왔는데 한 잔 안 꺾고 간다하면, 니가 옛날부터 얻어먹은 게 얼만데, 지금 한 잔 더 보탠다고 형이 뭐라 하겠어, 새끼야, 좋은 말 할 때 앉아, 조문객들 누구 하나 올 때까지만이라도 앉아있으라고!”

  해거름 때가 되어야 하나둘 조문객이 찾아왔다. 홍의 머리칼엔 흰 리본도 완장도 아무것도 없었지만, 누가 보아도 그녀는 상주 역할을 맡은 배우 같이 장례식장이란 무대를 누볐다. 다만, 그들이 만들어왔던 작품처럼 식장은 한산했다. 나는 배우 없는 무대를 마주한 관객이 되어 텅 빈 흰 벽을 쏘아보고 있었다.

  “선약 있다며.”

  “취해서 못 가.”

  “그럼 좀 더 취해도 되겠네.” 홍은 내 빈 잔에 투명한 소주를 채웠다. 나도 그녀 몫의 소주를 채워주었다.

  “이제 몇 살이지?”, “소띠야. 선배들하고 같은 띠.”, “형하고 극단 세울 때가 정이 너 나이네그녀는 조용히 주억거렸다.

  “선배들은 좋겠수.” 그녀는 대꾸 없이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나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새벽, 올 때와 마찬가지로 택시를 잡아탔다. 같은 길이지만, 어둠이 내깔린 길은 다른 길처럼 보였다. 구두를 꿰신기 전, 식장 한쪽 구석에서 담요로 돌돌 말아 잠든 홍을 잠시 내려 봤다. 여전히 마른 얼굴이지만, 화산재처럼 내려앉은 없던 기미가 눈에 들어왔다.

  12년 전, 노동자 예술단체에서 나온 백과 홍, 두 선배는 극단 을 만들었다. 그 무렵, 나는 근처 동사무소에서 공익근무요원 생활을 하고 있었고, 문청이었다. 그들과 나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운동권 출신임에도 드물게 예술만이 변혁의 도구이자 목적일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는 점과 술을 어마어마하게 밝힌다는 것이었다. , 지독한 가난이 안경처럼 들러붙어있었다는 것쯤. 나는 집을 나와 선배들의 공간에서 잤고, 읽었고, 글을 썼고, 동사무소로 출근을 했다. 그들은 낮 동안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연습을 했고, 해가 떨어지면 공연을 했다. 관객이 없어서 준비한 공연이 무산되는 날이 잦았다. 그런 날마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술이 들어가면 나는 나의 대본으로 그들이 연기하는 상상을 했는데, 그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기에 침해당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유예될 수 있는 행복이었다. 왜냐하면 내 대본은 그들 자신의 이야기였고, 그쯤의 백과 홍은 거의 늘 싸웠기 때문이다. 나의 공익근무가 끝날 즈음, 그들은 이혼을 했다. 나는 이혼이란 걸 하면 모든 게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고, 예술 역시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모양인지, 그들은 남이 되고도 여전히 함께 공연을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모르긴 모르지만 가끔 같이 잠도 자는 것 같았다. 세상과 예술의 복잡성보다 우리의 육체가 속삭이는 욕망이 생각보다 단순하고 힘센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좋았는데그렇게 행복했던 우리는 왜 멀어졌을까.

  한 팔구 년쯤 전이었다. ‘선배들은 좋겠수라고 말할 때, 백 선배는 이모를 부르고 있었다. “저기, 죄송한데 면 좀 더 주실래요?” 십이 년이나 흘러 내가 그쯤의 선배 나이가 되어서 기억을 헤적여보니, 나는 그들을 시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을 말인가? 그들의 가난을? 예술가적 삶으로의 밀도 있는 투신을? 시기라는 막연한 표현에 대해 소략하나마 부연이 필요하겠다. 그들의 개성적인 작품이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셋이 술을 기울이는 빈도는 줄었다. 소집해제가 된 내가 학교로 돌아가 언어라는 기호에 맹목적으로 매달릴 즈음, 그들은 점점 반언어적인, 퍼포먼스 쪽으로 기울었다. 어쩌면 그런 지향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주어진 소명을 불태우며 기울였던 노력은 구체적으로 인도, 이스라엘, 대만, 일본 등지에서 연출가, 배우들을 초청해 협업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었다. 극단 이름과는 달리, 그들이 쉼 없이 내놓은 건 작품만이 아니었다. 워크숍이나 기금 신청을 위한 여러 방면의 실무적인 노력들도 있었다. 허나 언제까지고 문청을 벗지 못한 나는 그들의 고단함을 모르지 않았지만, 지난 세월을 깡그리 잊어버린 사람처럼 마침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 선배를, 그의 주목받고 있는 이즈음에 대해 비아냥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 선배는 또 이모를 불렀다. “저희 빨간 게 아직 많이 남아서요. 흰 거, 이거 조금만 더 삶아주실 수 있나요?” 나는 자리 내내 흰 거든 빨간 것이든 집어먹질 않았다. 새로 채워진 접시에서도 그는 빨간 것과 흰 것을 섞지 않고, 면발만 집어 뱃속으로 삼켰다. 그는 무슨 재미난 장난에 빠져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그리곤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번에도 두 번 리필해주셨거든. 오늘은 우리 정이랑 많이 마실 거니까 더 달래야지.”

  구두를 벗는데, 눈 비비며 나온 아내가 나를 급하게 막아선다. 흡사 미식축구선수처럼 태클이라도 할 기세여서 웃음이 나온다.

  “웃어? 미리 연락하라고 했잖아! 신생아 있는 집에 이렇게 들어오기 어디 있어!” 태클하다 말고 부엌으로 돌아가 찬장에서 소금을 꺼내는 아내를 무시하고 상의를 벗으며 물었다.

  “먹을 것 좀 없어?”

  “또 빈속으로 마셨어?” 아내는 중얼거리면서 소금통을 식탁에 올리고는 영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씻지도 않은 손으로 소금 한 줌을 쥐었다. 잠자코 희디 흰 소금을 내려 보다 냄비를 꺼내 소금을 뿌리고 물을 받았다. 흰 것이 녹아든 물이 끓길 기다리면서 찬장을 뒤져 소면을 찾았다. 엄지와 검지로 한 움큼 쥐자, 오백 원짜리만 하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쥐었다. 얼른 카디건 하나를 더 걸치고 나온 아내가 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야?” 냄비 속을 들여다본 아내가 큰 아들 대하듯 손바닥으로 등을 때렸다. “대체 몇 인분이야! 다 버리려고 그래?”

  “, 얼마 한다고 그래. 이것들 좀 봐라. 이렇게 몇 번은 더 삶겠네!”

  “, 취했어? 소리는 왜 지르고 그래. 겨우 재웠단 말이야!”

  “……이만하면 행복하지 않아?” 아내는 대답 없이 카디건 앞섶을 여미고 홱 돌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이틀 후, 출근길의 환승버스를 기다리면서 전화기를 열었다. 지금쯤 홍 선배는 백 선배의 유골인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금방 오지는 않았다.

  <잘 타고 있음. 비쩍 마른 인간이라 그런지 금방 타는 것 같어!>

  그날, 백은 꽁무니를 빼고 도망을 놓았다. “작작 좀! 작작 좀!” 하는 주인여자의 서슬이 워낙 드세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빨간 것은 젓가락도 못 대고 쫓겨나는 모습에 나는 아연했다. “빨간 건 생각하지 마.”, “뭐라고요?”

  “그래도 우리 흰 거 하나는 얼마나 많이 먹었냐……

  “선배.”

  “.”

  “그래서, 행복하냐?”

  주머니 속에서 부르르 진동이 울었다.

  <정아, 뼛가루가 회색일 줄 알았는데참 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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