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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죽어도 매한가지_임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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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5-16 11:09 조회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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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도 죽어도 매한가지

 

 

 

얼마 전 한 작가의 강연회에 참석했다가 행사가 끝나고 강연자의 품에 뛰어들었다. 들어본 적 없는 통곡이 쏟아져 나왔다. 강연자는 페이스북 친구일 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소리는 배에서 터져나왔다. 그 작가가 ‘괜찮아요, 괜찮아요’라며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고 그 말에 간신히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이유는 아직 알 수 없다. 작가의 경험과 내 경험이 오버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여성도 사람이다'라는 생각에 다다른 것은 아닐런지? 여성도 사람이다. 여성은 '남성의 기호를 구현한 몸'이 아니다. 나는 내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과 뼈, 가슴과 성기를 갖추고 있다. 누군가의 배 아래 깔려 있었을 때 나는 사람이었다. 상사의 호텔방 심부름에 호출되었던 나는 사람이었다.

 

사람이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다. 몸에 쏟아지는 수많은 품평들, 축소화된 몸을 가지라는 암묵적인 시선들, 뇌가 없이 몸으로만 존재할 것이라는 폭력 앞에서 좌절감을 느끼곤 했다. 평가와 시선과 침범에 몸은 너덜너덜해졌다. 누추한 몸은 모멸감으로 변환된다. 살아도 살지 않는 것이다.

 

지난 3월말 문화평론가 심정기(가명)씨는 자신의 SNS에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한 제품에 대해 글을 올렸다. 그 제품에는 교복을 풀어헤친 미성년자의 가슴이 디자인되어 있었는데 사용자가 손을 올리면 마치 가슴을 만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보는 즉시 불쾌하다고 느꼈고 포스팅을 공유하면서 감정을 토로했다. 심정기씨는 내게 메시지를 보내 ‘포스팅을 공유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해왔다. 나는 해당 글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심정기씨의 원글에 ’성적 대상화‘를 문제시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는 처음에는 ’이해한다. 생각이 짧았다‘는 입장을 취했다. 페친들은 그의 시인에 박수를 보냈다. 나는 더 이상 내 피드에서 댓글을 보고 싶지 않아 그를 차단했다. 이후 그가 나와 나눈 대화를 캡처해 내가 자신을 ’조리돌림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포스팅을 보고 처음 느낀 감정은 불쾌함이었다. 심정기씨와 그의 무리들은 청소년 여성의 가슴을 만지는 듯한 디자인 제품을 놓고 낄낄댔고 자신들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듯했다. 팔로워들은 그를 ‘우쭈쭈’하며 치켜세웠다. 

 

10대 때부터 간헐적으로 가슴튀(가슴 만지고 도망가기)를 당했다. 시선강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내 가슴이지만 내게 속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농락당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가슴께에서 통증을 느꼈다. 누군가가 바늘로 명치를 콕콕콕콕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 통각이 사라지게 만드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는 것일까? 

 

죽어서도 모멸감을 털 수가 없다. 소설가 강동수는 세월호 희생자인 17세 여학생 혼령을 화자로 삼은 뒤 가슴을 자두에 비유했다. 자두즙을 '내 젖가슴처럼 단단하고 탱탱한 과육에 앞니를 박아 넣으면 입속으로 흘러들던 새큼하고 달콤한 즙액'이라고 표현했다. 먹는 것은 섹스하는 것에 자주 활용된다. '탱탱한' 육체에 '앞니'나 성기를 '박아 넣'고 싶은 중년 남성의 성욕이 표현되어 있다. 죽어서도 늙어가는 남성들의 눈요깃거리가 되어야 한다. 눈을 감아도 감은 것이 아니며 죽어도, 살아도 매한가지인 목숨이 된다. 

 

 

침대에 모로 누워 몸을 웅크려 본다. 폄하당한 몸을 끌어안는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쓸어내린다. 이제는 편히 쉬라고 중얼거려 본다. 4시 50분, 5시 30분. 설정된 알람이 울려서야 감았던 눈을 뜬다.

 

 

 

임은주

작가, 서점 주인, 출판사 대표

‘비엔나 호텔의 야간 배달부‘ 저자

‘책방 비비드’ 운영자

 

‘비비드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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