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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징크스라고 하면 간단할 얘기_정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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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5-02 13:37 조회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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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징크스라고 하면 간단할 얘기

      

 

정재운

 

    

 

  

  비행기는 기약 없는 연착을 반복했다. 시각은 진작 새벽을 물리치고 대낮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나, 시계(視界)는 차도가 없나보다. 단원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파묻은 지 오래. 긴 기다림은 너나 할 것 없이 발바닥 대신 궁둥짝과 바닥을 맞붙게 만들었다. 사람 하나 지나다닐 좁은 폭만 겨우 확보해놓은 보딩 게이트 앞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 소속 공무원 G였다.

  그가 단장님, 하고 불렀다. 위장에 찌르르한 불편감이 돈다. 내 비록 이 예술단의 기획이자 인솔이며 까짓것 총무까지 맡고 있다지만, 간단한 명명에 따라 원하지도 않는 작위를 추가로 부여받는 것만 같다. 하긴, 이런 연착 앞에서도 스텐 재질의 차가운 차단봉 다리에 얼굴을 뭉개고 있는 나야말로 참 리더의 모습이 아닌가, 게이트가 언제 열릴 줄 알고기다림은 사람을 실없이 만든다.

  나는 그를 주무관님, 이라고 불렀다. 계장님이라 불러야하지만, 지난 이 년 간 붙어버린 호칭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부르질 않는다. 부르는 말없이 그냥, 용건만 말하기로 했다. 그래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정말 그때까지는 말이다.

  세 시간 뒤, 우리는 비행 재개 소식을 들었다. G는 그다지 내려오지도 않은 안경을 두 번 추어올리고는 뒤돌아 허정허정 걸어갔다. 걸어가다 곧 뛰기 시작했다. 아무런 의전도 없이 방치된 실장 생각이 이제야 난 모양이다. 하긴, 나도 그의 이야기로부터 놓여났다는 것이 한동안 실감나질 않았다. 그는 대체 내게 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일까. 관능의 종말이니, 운명과의 내기니지랄, 그냥 징크스라고 하면 간단할 것을. 명색이 문화예술과란 곳에 있으면서 전혀 예술적이지 아니한 일처리 방식을 선호하는 인간에게서 나온 문자들이라 더 거부감이 일었다.

  G는 혼자가 된지 9주째라고 했다. 상술하면, 자신의 결혼생활을 청산한지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9년간 이어온 관계를 끝낸 것은 상대방, G의 아내였다. 잠깐, 쉬운 이야기를 복잡하게 설명하는 듯하다. 당황해서 그렇다. 연달아 9라는 숫자가 나오는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에다 9가 하나 더 붙는 대과거의 이야기는 아직 딸려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결혼이 임박해오던 어떤 한 시기까지 두 명의 연인과 교제 중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9주 전 이혼당한 아내와는 아주 오래된 연애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 다른 한 연인에 관해선 구체적인 설명이 누락되어 알 수 없지만, ‘정신차려보니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는 그의 상투적인 표현을 미루어 대강의 스토리라인은 짐작할 수 있겠다. 파격적인 성미의 소유자가 아니었던 G는 결혼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고, 미안하지만 급물살에겐 필연적으로 이별을 고해야했다.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는 두 사람 모두에게 몸과 마음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가능한가요?”라는 나의 얼빠진 질문에 그는 코볼을 모아 미간에 주름을 패길 두 번 반복했다. 어느 날의 그는 끈끈하게 젖어든 몸을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운 채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 좋아하던 시절은 끝이 났다.’ 그날의 그는 오직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평소 쳐다보지도 않던 오션뷰가 있는 룸으로 선택했다. 오천 원 더 비싼 룸을 대실하고도 창문 한 번 열지 않은 채 섹스에만 몰두했던 그는 곧 이별을 통보 당할 애인을 떠올리자 슬그머니 죄의식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곧 오늘만이다, 내일부턴 정말 와이프 될 여자를 위해서만 살자고 되뇌며 커튼을 젖혔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흰색 요트 한 대였다. 그때까지도 그는 해변과 지나치게 가까운 자리에 떠 있는 요트의 출현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나른한 외부의 풍경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G의 내부에 불을 당겨 내기를 걸어볼 만한 것이 되기까지는 불과 수 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쯤 샤워를 마친 여자가 나와 뱅그르르 말린 팬티를 주워 그에게 던졌다. ‘얼마나 급했으면, 이게 뭐야하고 눈을 흘긴다. 그는 스타킹부터 신는 그녀를 외면한 채 손가락으론 말린 팬티를 풀지만, 시선은 여전히 요트에 가 있다. ‘그때, 그녀가 그 말만 안 했어도그때 그녀가 한 말은 별 말도 아니었다. ‘! 배네.’ 이게 다였다. 거기서 그는 다소 엉뚱한 형태의 계시를 받은 듯하다. 좋아하던,이란 순도 높은 감정의 종말이 아닌 관능의 종말을 예감했던 것이다. 그는 관능의 유예가 9개월을 못 가더군요라고 탄식했다.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던 9주 전 그날, G는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아니, 반쯤 경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앞서 가던 트레일러 한 대가 어떤 마땅한 소이도 없이 기다란 허리를 도로에 벌러덩 누워버린 것이다. 사고가 난 그 시각 교통사정이 유달리라고 여길 만큼 한산했기에 다행히 연쇄추돌은 막을 수 있었다. 그도 중앙선 역주행까지 무릅쓰며 가까스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무사히 아파트 지하 주차장까지 당도한 그는 노란 주차선 안으로 평소보다 차를 반듯하게 넣었다. 차가 짧은 경적과 함께 귀를 접는 동안, 그는 다짐했다. ‘오늘만이다, 내일부턴 정말 와이프를 위해서만 살자!’

  “그런데, 다 알고 있더군요라고 그는 매가리 없이 주억거렸다. 나는 G의 와이프가 알고 있던 게 뭔지 묻지 않았다. 그도 더는 부연하지 않았다. 추측의 지대 속에 진실의 폭을 협곡처럼 좁혀놓고 생각해보면 그날 청사를 나온 뒤 G의 행적에 관한 것이 될 테다. 그는 차례로 헬스장과 바(bar)를 들러 할 수 있는 한 귀가를 지연시켰다. , 이 진실의 협곡은 폭이 좁은 대신 측량할 수 없이 깊어서, 바 주인과 G 사이에 오간 부정한 발화와 생각을 알 길 없는 와이프가 어떤 상상력을 동원하였을지는 역시 이지의 영외지에 있다. 진실의 폭을 대양 같이 넓힌다면 9년 전, 9개월간 그가 빠져있던 관능의 세월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서늘한 추론에 닿는다. 대양은 협곡보다 깊으면 깊었지 얕지는 않아서 이 경우, 그동안 앎을 숨겨온 이유에 대해선 역시 알 길이 없다.

  ‘설마하니 오션뷰가 있는 룸에서 내가 걸었던 운명과의 내기까지 와이프가 알 리는 없겠지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해변으로 올라와 죽는 고래가 떠오르더라고.” 이 양반이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가? “아니, 물 위에 있어야할 요트가 왜 땅으로 올라와서 고꾸라지느냐 말이야.” 나한테 대체 어쩌란 말인가. “, 비행기 뜨려나 보다.” 근데 이 새끼, 언제부터 반말하고 있었던 거야

  공무원들과 예술단은 좌석 등급이 달랐고, 급하게 잡힌 일정 탓에 비행기 편도 달랐다. 어느새, G는 있는 힘껏 달려 막 9번 게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끝>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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