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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기 위하여_이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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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2,019회 작성일 18-11-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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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빨 18.11.15 에세이

길을 가기 위하여

이기록

 

 

미당 문학상은 꽤 권위 있는 문단의 상이다. 얼마 전 미당 문학상의 폐지 소식이 들렸다. 확실하게 사라진 건지는 조금 더 지켜볼 부분이 있으나 아직 남아있는 동인 문학상등 친일 문학인의 기념상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당연한 일들이 이제야 제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틈만 나면 육당 문학상춘원 문학상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미당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내포하는 이름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름이다. 미당 서정주. 중고교 참고서에 나오는 그의 작품은 시인들 중에서 제법 많은 편이다. 우리는 그의 시에 감동하고 위안을 얻기도 한다. 얼마 전 11월 초에는 고창시에서 미당문학제가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쪽에서 그의 시를 널리 알리려하는 모습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 언덕도 / 산도 / 뵈이지 않는 /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 몇 천 길의 바다런가. // 아아 레이테만은 / 여기서 몇 만 리련가……. //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 아득한 파도 소리……. /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 그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 / “갔다가 오겠습니다” / 웃으며 가더니 /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더니 /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마쓰이 히데오! /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 마쓰이 히데오! /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 공격 대원. / 귀국 대원. // 귀국 대원의 푸른 영혼은 /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 소리 있어 벌이는 고운 꽃처럼 / 오히려 기쁜 몸짓하며 내리는 곳. /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 수백 척의 비행기와 / 대포와 폭발탄과 /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 그대 /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 장하도다 /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 아아 레이테만이 어데런가. / 몇 천 길의 바다런가. // 귀 기울이면 /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 아득한 파도소리…… /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매일신보, 1944129일자>

 

위 시는 미당 서정주가 매일신보에 발표한 <마쓰이 오장 송가>. 미당 서정주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는 인물이고 이승만과 전두환을 찬양하기 위한 작품들을 발표했던 인물이다.

직업상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대한민국의 교육이 암기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학생들이 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경우를 만나기가 힘들었다. 위 시를 읽어주며 무슨 내용일까 물어봐도 제대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없었다. 이 시를 서정주가 썼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친일의 부끄러운 역사를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 그리고 친일 인사는 국가유공자가 되어 국립묘지에 묻히거나 그를 기리는 동상이나 기념제들이 생기고 있다.

우리의 교과서 또는 학습서에 나오는 친일 문학인들의 작품들을 우리는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찬양하고 있어야 할 건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들의 친일 행적은 모두 사라지고 그들은 아름다운 문학을 남긴 우리들의 정신적 스승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아직 우리에게 근현대사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쉼없는 발걸음들과 며칠 전 법원에서 판결이 난 징용과 징병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니 말이다. 아직까지 일본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있는 현실 안에서 이런 일들이 제대로 진행되어 빨리 마무리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여기에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우리의 일그러진 친일 문학인들과 부역자들에 대한 마무리다.

다른 장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문학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한다. 권력에 빌붙어 자신의 안위를 구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오랜 시간이 지나 단죄하진 못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사회가 바르게 갈 길임은 분명하다.

당당히 그들의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가르치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미당 서정주가 자신의 친일행위를 변명하며 한 말을 전한다.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